[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소문난 책벌레서 Mr.오일로

위기때마다 “공격 앞으로”

전문경영인+오너십 함께 갖춰

정유업계서 40년째 뚜벅뚜벅

녹색시대 ‘Mr.에너지’ 변신 꿈꿔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너 경영인과 전문 경영인을 비교하며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가장 좋은 건 전문 경영인의 자질을 지닌 오너 경영인”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그런데 그런 경우가 생기기 쉽지 않죠”라고 덧붙였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몇 안 되는 최고경영자(CEO)이다. 고 구인회 회장과 함께 LG그룹을 세운 고 허만정 씨의 손자인 허 회장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정유업계에서만 40년째 일하는 국내 최고의 에너지 전문가다. ‘미스터 오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 에너지 외길 반세기 ‘미스터 오일’

허 회장은 1966년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스스로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위스콘신대에 다닐 때에는 하루 3시간 넘게 자는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 공부 욕심이 지독했다고 한다. 박사학위를 얻은 뒤에는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세계적인 석유회사인 미국의 셰브론에서 3년간 연구원 생활을 거친 뒤 귀국해 1973년 GS칼텍스(당시 호남정유)에 입사했다. 그 뒤로 GS칼텍스에서만 36년을 지냈다. GS칼텍스에서도 기술·건설 담당 상무, 원유·수급 담당 부사장, 기획·생산 담당 부사장직을 3∼4년씩 지내며 주요 부서에서 ‘내공’을 쌓았다.

그 자신을 포함해 이론과 현장을 철저히 아는 전문가들이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게 허 회장의 신념이기도 하다. 1994년 그가 사장에 취임한 뒤로 GS칼텍스는 신입사원 중 이공계 출신은 공장에서, 인문계 출신은 영업 일선에서 6개월간 먼저 근무하고 재배치를 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허 회장이 개인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경영관을 설명한 글 중에는 “내가 초일류가 될 테니 임직원들도 초일류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공부 잘한다고 경영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GS칼텍스가 눈부시게 발전한 중심에 허 회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인 석유화학업계에서는 투자 규모도, 그에 따른 이익이나 손실 규모도 천문학적인 액수”라며 “그만큼 CEO의 전문성과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위기 때 공격적인 투자로 돌파구 마련

탄탄한 기본기에서 통찰이 우러나오는 것일까. 그의 경영 스타일은 위기일수록 빛을 발한다. 그에게는 경영 환경이 나쁘다고 생각할 때 특유의 감각으로 공격적 투자를 펼쳐 돌파구를 찾고 이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만든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80년대 초 2차 석유위기를 겪을 때다. 1981년 하루 생산량 15만 배럴 규모의 제3원유정제시설을 증설해 정제 능력을 하루 생산량 38만 배럴로 늘린 상태에서 석유 위기가 닥치자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당시 허 회장은 그 같은 어려움을 원유 도입처를 다변화하고 수출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돌파했다. 이 전략이 맞아떨어져 훗날 GS칼텍스가 대표적인 수출 기업이 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GS칼텍스는 1983년 정유업계 처음으로 수출 2억 달러 탑을 수상했고, 1997년에는 업계 최초로 일본과 미국에 휘발유를 수출하게 된다. GS칼텍스는 2006년부터 수출액이 매출의 50%를 넘어섰으며 지난해는 매출액 34조4000여억 원 중 19조5800여억 원이 수출에서 발생했다.

1995년 국내 최초이자 단일 공정으로는 세계 최대인 하루 생산량 9만4000배럴 규모의 유동상촉매분해공정(RFCC) 고도화시설을 준공한 것도 그의 판단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도입된 적이 없었던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수천억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벙커C유 등 중질유 수요는 줄고, 휘발유 등 경질유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정유사들의 고도화시설 투자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됐다.

○ “고도화시설, 원유 탐사, 연구개발은 필수 투자”

이번 세계 경제위기에서 그는 어떤 그림을 보고 있을까. 지난해 10월 허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2차 석유위기 때를 언급하며 “우리는 당시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직접 증명했다. 임직원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지속해 달라”고 당부했다.

세계 경기 침체로 정유사에는 힘든 해가 될 것이 확실한데도 그는 올해만 1조 원이 들어가는 제3고도화시설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 석유화학업계에서 한 사업장에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전례가 없다. 올해 2월에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업무도 과감히 줄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제3고도화시설과 원유 탐사, 핵심 연구개발은 필수 투자”라고 못 박았다.

그가 올해 첫 공식 일정으로 찾은 곳은 서울 강동구 성내동 신에너지연구센터였다. 새해 첫 내부 경영회의도 그곳에서 했다. 지난달 출범한 녹색성장산업협의체 초대 대표도 맡았다. 이를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허 회장이 이제 ‘미스터 오일’에 머무르지 않고 ‘미스터 에너지’가 되려는 것 같다”는 해석도 나왔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허동수 회장 프로필 ▼

―1943년생 ―1966년 연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68∼1971년 미국 위스콘신대 화학공학 석·박사

―1971∼1973년 미국 셰브론연구소 연구원

―1973년 GS칼텍스(당시 호남정유) 입사

―1978∼1981년 GS칼텍스 상무, 부공장장

―1984∼1987년 원유 수급 담당 부사장

―1994∼1997년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

―1994∼1995년 대한석유협회 회장

―1998∼2002년 GS칼텍스 대표이사 부회장

―2003년∼ GS칼텍스 대표이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