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경영인 앙드레 金
“후계자? 아직 도전할게 많아서…”
오랜만에 들른 그곳은 여전히 ‘하얀 왕국’이었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74) 씨가 각국에서 모은 흰색 아기천사 석고상들이 곳곳에 놓여 있고, 흰 블라우스를 입은 직원들은 깍듯했다. 바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앙드레 김 아뜨리에’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22∼24일 열릴 국제섬유박람회인 ‘프리뷰 인 상하이’의 오프닝 쇼를 준비하고 있던 앙드레 김 씨는 “귀하게 오셨어요. 플리즈, 플리즈(Please, please)” 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어쩌면 국민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의 외양과 언행 때문에 한국의 대표 전방위 디자이너, 경영자로서의 면모가 묻혔던 건 아닐까.
○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많이 고민”
옷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앙드레 김 옷은 늘 똑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옷은 변한다. 이번 상하이 쇼에서 선보일 중국풍 재킷은 어깨의 각이 단단하게 잡혔다. 세계적 트렌드인 ‘각진 어깨’ 요소가 녹아 들어간 것이다. 대중은 앙드레 김 씨의 화려한 패션쇼 의상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의 단골들은 베이지, 파우더 블루 색의 ‘품격 있는’ 정장을 입으러 이곳에 온다. 앙드레 김 씨가 직접 세 번씩 피팅(가봉)한다.
―세계적으로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시장이 줄고 있습니다. 대안이 있습니까.
“그동안 바이어를 위한 옷 대신 예술적인 옷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랄프 로렌은 여러 기성복 라인을 만들죠? 저도 앞으로 ‘앙드레 김 우먼’ ‘앙드레 김 맨’ 같은 기성복을 만들어 백화점에서 팔고 수출도 할 계획입니다. 요즘엔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1962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냈으니 2012년이면 50주년이다. ‘앙드레’란 이름은 당시 교류하던 프랑스대사관 사람들이 “국제적 이름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앙드레 김’은 정말로 국제적 이름이 됐다. 외교 사절들에게 각국 국경일에 맞춰 꽃을 선물하는 고객 관리, ‘품위, 교양미, 순수’ 등을 강조하는 브랜드 이미지 관리, 퇴근 후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여직원을 (순수교양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해고하는 냉혹한 직원 관리가 그간 ‘앙드레 김 아뜨리에’란 회사를 키워온 힘이다.
○ 자전거 등 전방위 ‘앙드레 김’ 라이선스
그는 란제리, 가전, 자전거, 도자기 등 10여 개 회사들과 디자인 라이선스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인 셈이다. 그러나 과거 몇몇 유명 브랜드는 라이선스 사업을 남발해 브랜드 관리에 실패하기도 했다. 앙드레 김 씨에겐 그런 고민이 없을까.
“Exactly(맞습니다). 어디를 가나 열광적으로 반겨주시지만, 정작 제 옷엔 부담을 느끼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앙드레 김’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지나친 대중화보다 지나친 신비주의가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산업 디자이너란 칭찬은 과해요. 각 회사 제품 디자이너들이 제 패턴 자료로 디자인해 오면, 전 최종 ‘컨펌(확인)’을 하니까요.”
―옷 매출과 라이선스 비중은 어떻게 됩니까.
“(난처한 표정으로) 그건 밝히기 곤란한데요. 라이선스로 많이 법니다.”
최고경영자(CEO) 앙드레 김 씨는 고독하다. 50여 명의 직원을 이끌지만 주요 의사결정은 혼자 내린다. 후계자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왜일까.
“조직 운영은 후계를 정할 수 있어도, 디자인 후계는 억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직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요. 암벽 등반 등 익스트림 스포츠웨어도 만들고 싶거든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