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기 수혜자?… 현대·기아차의 5가지 난제

  • 입력 2009년 4월 22일 02시 57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최근 ‘자동차 산업 위기… 우리만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만화책 3만여 권을 제작해 전국 공장의 임직원 가정에 보냈다. 내용은 ‘자동차 산업의 위기 속에서도 현대차는 잘나간다’는 세간의 시각에 대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해명을 담고 있었다. 국내외에서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현대·기아차의 임원들은 입만 열면 “정말 어렵다”는 말을 쏟아낸다.

판매량이 급감한 일본 도요타 등 다른 자동차회사에 비해 괜찮은 실적을 보이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단순히 ‘엄살’에 불과한 걸까.

○ 착시 현상에 둘러싸인 현대·기아차

1, 2월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경쟁 기업들의 판매량이 50% 안팎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는 오히려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늘거나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선 “현대차가 이번 경제위기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차의 1분기(1∼3월) 전체 판매량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5%와 17.4% 줄었다. 그것도 지난해 1분기 미국 중국에서의 판매가 부진했던 실적과 비교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일본이나 미국 경쟁 기업만큼 판매 감소 폭이 크다는 것이다.



엔화와 달러의 강세도 현대·기아차의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요소다. 판매 감소에도 불구하고 1분기 현대·기아차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 현대차와 기아차의 매출은 700억∼1000억 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율 거품이 제거되면 함께 사라지는 이득이다. 중국에서의 선전(善戰)도 중국 정부의 소형차 구입 지원책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내수시장 점유율 상승도 잇따른 신차 출시 효과와 쌍용자동차와 GM대우자동차가 흔들린 데 따른 반사이익을 본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현대·기아차가 최근 중·대형차를 주로 내놓아 해외 시장에선 신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산적한 위기들

삼성경제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하반기에는 1124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경제연구소들도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1200원대 중반으로 예상했다.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1050원 선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이 적중한다면 현대기아차가 누려온 ‘환율 효과’는 급속히 사라진다. 이항구 팀장은 “환율 효과가 벌써 상당 부분 걷히고 있고 하반기에는 효과가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와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것도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 유럽 미국 등의 경쟁기업들이 연초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현대·기아차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 내부 구성원들이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진짜 위기”라며 “경기 회복기에 접어들면 구조조정을 마친 유럽 일본 미국 회사의 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외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소형차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달 말 시작되는 노사 임금·단체협상도 복병이 될 수 있다. 현대차 노조는 이미 기본급 8만7709원 인상과 성과급 지급, ‘신차 개발 시 국내 공장 우선 생산’ 등의 임단협 요구안을 마련했다. 현영석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 노사가 올해 임·단협을 슬기롭게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회사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사 갈등으로 예전과 같은 파업이 반복될 경우 그나마 팔리고 있는 소형차도 생산이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력을 갖춘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 유럽의 자동차 회사 사냥에 나서고 있는 것도 중대한 도전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들이 볼보, 사브 등 선진 자동차 기업을 인수해 규모와 기술을 확보할 경우 현대·기아차와의 격차는 급격히 좁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 교수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관건은 올해 노사 관계와 국내외 공장 간의 생산·재무 유연성 확보에 있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