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 1~2% 불과 “고마워서 더 열심히 갚아”
"은행이 저희같이 돈도, 배경도 없는 사람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직까지의 현실이지만 이번에 우리은행의 일선 직원들을 만나면서 친절한 모습에 감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은행 환승론을 통해 고금리에서 벗어나 새롭게 비상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1월 말 우리은행의 '우리환승론' 대출상품을 통해 고금리에서 벗어나게 된 채모 씨(45·여)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전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채 씨는 사업자금이 필요해 여러 은행을 방문했지만 신용등급이 낮고 소득 자료가 없어 번번이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두 곳의 대부업체에서 연 48%짜리 대출을 받아 높은 이자를 갚아오던 중 우리환승론을 통해 연 13%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었다.
●저신용자 대출 연체율 1~2%대 선방
그동안 서민들에게 높은 벽이기만 했던 시중은행들이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가장 타격이 심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처음엔 정부가 서민 금융지원을 독려하면서 은행들이 움직였지만 최근엔 서민 금융도 수익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발적으로 상품을 내놓는 곳이 많다.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연 30~40%대 고금리 대출을 10%대 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주는 '환승론'과 신용등급 7등급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저신용자 대출'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은 연체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저축은행, 캐피탈 등 제2금융권에서 주로 취급해왔다. 하지만 시중은행이 저신용자 대출을 실시해 본 결과 예상 외로 연체율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12월부터 운영 중인 환승론은 지금까지 총 101억 원 어치가 팔렸는데 연체율이 0.48%다. 짧은 운영기간을 감안해도 양호한 수준이다. 저신용자 대출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 전북은행의 저신용자 대출 상품인 '서브크레딧론'의 연체율이 2.8%, 농협 '새희망대출' 2.7%, 부산은행 '크레딧플러스론' 1.3%, 하나은행 '하나소액대출' 2.1% 등 모두 1~2%대 연체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은행들은 저신용자 대출을 실시한지 1년이 넘었고 대출금리는 최저 연 11%, 최고 19.9% 수준이다. 1~2%대 연체율은 은행의 일반 가계대출 연체율(0.73%)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대출금리가 이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신용카드 연체율(3.43%)과 비교하면 연체율이 아주 낮은 것이다.
●'악착같이 갚겠다'는 의지 높아
전북은행은 저신용자 대출 잔액이 820억 원으로 은행권에서 가장 많다. 이 은행은 대출 신청자의 돈 갚을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출 상담을 일반 대출보다 세밀하게 진행한다. 영세 사업자의 경우 은행원이 직접 노점상을 찾아가 장사가 얼마나 잘 되는지 살피기도 한다. 전북은행 측은 "캐피탈, 대부업체를 이용하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고금리 부담을 덜어 낸 고객들은 낮은 이자에 대한 고마움으로 더 성실하게 갚아나간다"고 설명했다.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사회 취약계층에 무담보, 무보증으로 소액자금을 대출해줘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연체율이 2% 선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
지난해 10월 전북은행에서 서브크레딧론으로 300만 원을 빌려 미용실을 차린 이모 씨(29·전북 완산구)는 "이 돈으로 대부업체 빚을 다 갚아서 이자 부담을 줄였다"며 "매달 10만 원씩 적금을 들고 있는데 만기가 오면 적금을 깨서 대출금을 다 갚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돈을 제대로 갚아나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소득, 과거의 채무 규모 외에 개인의 의지도 상당부분 중요한 데 서민들의 원금 및 이자 상환의지가 매우 높다는 것이 은행들의 분석이다.
고영배 우리은행 개인영업전략부 부부장은 "서민 금융상품의 대상자는 주로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들이지만 상품 출시 전 예상과 달리 연체율이 낮고 상환이 잘 이뤄지고 있다"며 "서민금융 상품 판매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조성목 서민금융실 부국장은 "이 정도 연체율이 유지만 된다면 은행의 저신용자 대출이 은행과 서민이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