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엔 평범하고 얌전한 스타일이었고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내 보물 1호는 아이들입니다.” 이달 초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대강당 연단에 선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은 전 사원 앞에서 개인사를 스스럼없이 털어놨다. ‘CEO와 通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구 부회장이 자청해 마련한 것. 그는 직원들에게 “CEO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임직원들과 더 가깝게 지내도록 하겠다”며 ‘공개 구애’에 나서기도 했다. 이와 함께 LG상사는 다음 달부터는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다양한 경영 아이디어와 경험을 전체 e메일로 발송하는 일명 ‘e-Round’를 전개할 계획이다.
CEO가 직접 현장을 찾아 알릴 것은 알리고 주문할 것은 주문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최근 한 달여간 현장 20여 곳을 돌며 위기관리와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당부했다. 최 회장은 또 월례 회동 등을 통해 사장단에 그룹 구성원들과 스킨십을 자주 갖도록 주문했다.
허창수 GS회장도 지난달 계열사 사장단 등과 함께 주요 사업영역의 하나인 유통 현장을 살펴봤으며 22일 열린 ‘GS 임원모임’에서는 “급변하는 상황에 차분하고 정확하게 대응하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글로벌 경제가 이미 충분히 성숙해 차별화된 사업 기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며 “모든 임직원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업계의 흐름을 안이하게 모방하는 일도 없애라”고 덧붙였다.
사내방송을 활용하거나 직원 가족들을 위한 ‘감성 스킨십’을 시도하는 CEO도 상당수다. GS리테일의 허승조 부회장은 고객이 직원을 칭찬하는 사연을 홈페이지나 매장에 남기면 자신의 명의로 대상자인 직원 가족에게 감사편지와 꽃다발을 보낸다. 이창규 SK네트웍스 사장은 올해 초 사내방송을 통해 “2차, 3차 글로벌 위기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를 겪어본 기업이라면 당시 ‘너 아니면 나’라는 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입은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면서 “CEO들이 적극 나서서 ‘우리’, ‘고통 분담’ 등 감성적 키워드를 강조하는 것은 사원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