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0’시대… 정유업계 투자 바람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1분


■ 에쓰오일 온산공장 가보니

크레인처럼 생긴 ‘동다짐(무거운 물체를 반복해서 떨어뜨려 연약한 지반을 다지는 것) 전용장비’의 팔 끝에서 15t짜리 쇳덩이가 뚝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흙이 어른 키보다 더 높이 튀었다. 그 뒤로 넓은 벌판에 30m 높이의 동다짐 전용기가 몇 대 더 보였다.

옆에 있던 이동훈 에쓰오일 과장이 설명했다.

“매립지라 땅이 물러 저렇게 내리쳐서 단단히 다져주는 겁니다. 여기 옛날에는 물고기가 많았는데….”

22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일대 에쓰오일의 온산공장 증설 프로젝트 현장. 이달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2011년까지 앞으로 모두 1조4000억 원이 투입될 대규모 투자 현장이다. 이곳에는 파라자일렌과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석유화학제품 원료를 생산하는 ‘제2 아로마틱 콤플렉스’가 지어진다.

○정유업계의 대형 투자 바람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방도리와 산암리 근처에서는 올해 10월 완공 목표인 ‘알킬레이션’ 시설 공사의 마무리작업이 한창이었다. 50m 높이의 거대한 원통인 메인 타워 주변에 설치된 비계 위에서 작업자들이 타워 벽면에 커다란 문짝 같이 생긴 보온재를 붙이고 있었다. 이 시설 공사에 들어가는 사업비는 1800억 원. 이 시설에서는 환경오염 물질이 거의 없는 친환경 휘발유 유분(油分)인 ‘알킬레이트’가 만들어진다.

대규모 시설투자를 벌이고 있는 곳은 에쓰오일뿐이 아니다. 국내 정유4사 모두 2011∼2012년 준공 목표로 현재 1조 원이 넘는 투자를 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인천공장에 1조5000억 원 규모의 제4고도화시설을 짓고 있으며 GS칼텍스는 여수공장에 3조 원짜리 제3고도화시설 공사를 진행 중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조1000억 원을 들여 제2고도화시설을 짓고 있다. 단순 합산하면 모두 8조 원에 이르는 규모다.

올해는 유가 하락과 경기침체로 정유업계에는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정유사들이 이런 대형 시설투자를 하는 이유는 뭘까. “안 하면 죽기 때문”이라는 게 정유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대형 시설투자로 탈출구 모색

지난해 정유업계의 매출액 대비 당기순이익 비율은 0.8%였다. 1000원어치를 팔아 8원 정도의 순익을 남긴 것. 최근 취임한 오강현 석유협회장은 기자들을 만나 “이같이 이익률이 낮아서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수익률이 낮아진 가장 큰 이유는 단순 정제마진이 2005년경부터 거의 ‘0원’에 이를 정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석유제품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낮은 역(逆)마진 현상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히 생산 규모를 늘리는 게 아니라 고부가가치 제품을 어떻게 더 많이 만들 것이냐가 문제가 됐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가 짓고 있는 고도화시설은 값싼 중질유를 비싼 휘발유나 경유 등유로 분해하는 시설이다. 고급 기름의 판매 비중을 높이자는 전략이다.

국내 업체 중 고도화설비 비중이 가장 높은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에쓰오일은 2011년 제2 아로마틱 콤플렉스가 완공되면 자사의 석유화학제품 생산능력이 현재의 연간 120만 t에서 238만 t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쓰오일 측은 “석유화학은 1년 벌어 10년 먹고사는 산업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어려울 때 투자해두면 호황 때 결실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울산=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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