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도 두손 든 깐깐한 한국시장
‘고품격 매장’ 표방 성공신화 이끌어
친환경 경영으로 정상 향해 도전
할인마트 사업은 유통업계에서도 특히 간단치 않은 분야로 손꼽힌다. 할인마트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가격’과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한 마리도 놓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대형 기업들이 운영하는 할인마트는 싸다고 해서 시장 물건처럼 저급한 제품을 팔 수 없다. 그렇다고 고급이라고 해서 백화점처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할인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은 ‘10원에 왔다 10원에 떠난다’. 그야말로 ‘영리’를 넘어 ‘영악’할 정도로 똑똑한 고객들인 것이다.
한국에서 할인마트 사업은 유독 더 까다롭다. ‘가격’과 ‘품질’이란 양대 조건에 한 가지 조건이 더 붙기 때문이다. 바로 ‘서비스’다. 국내 할인마트 소비자들은 그야말로 ‘깐깐’ 그 자체다. 아무리 싸고 좋은 제품이라도 먹어볼 수 없고, 친절하게 정돈해 놓지 않았다면 바로 돌아선다. 글로벌 마트업계의 제왕인 ‘월마트’도 두 손 들고 떠났던 게 한국 시장이다.
이런 ‘험난한’ 국내 할인마트 업계에서 10년 동안 ‘장기집권’에 성공하며 폭발적인 기업 성장을 이뤄낸 경영인이 있다. 홈플러스그룹의 이승한 회장(63)이다.
○ 10년새 50배로 성장…‘고품격 마트’ 가치 제시
홈플러스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홈플러스가 설립된 1999년 삼성테스코홈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아 지난해 홈플러스그룹 회장 직에 오르기까지 이 회장을 통해 이뤄진 홈플러스의 성장은 놀랍다. 출범 당시 점포 수 2개, 임직원 440명, 대형마트 업계 12위의 ‘꼴찌’ 수준이었던 홈플러스는 10년 만에 점포 수 111개, 직원 수 2만 명, 매출액 9조 원에 육박하는 할인마트 업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장이 단순한 외형적 성장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쟁업체에서조차 “홈플러스가 국내 할인마트의 고급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할 만큼 이 회장은 ‘고품격 할인마트’라는 차별화된 경영철학을 통해 홈플러스의 성공을 이뤄냈다. 국내 할인마트 업계 최초로 백화점 같은, 그러나 백화점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센터를 개설해 주부들의 큰 호응을 얻어낸 것이 대표적 사례. 여행, 보험, 대출 서비스처럼 해외 할인마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금융·레저 분야의 선진 서비스를 국내 매장에 도입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도 ‘예술’에 비교해 설명한다. “사람들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일지라도 정작 예술가 본인은 그것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일생을 불살라 작품에 임할 수 있는 것이죠. 경영도 마찬가집니다. 경영자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열정을 다해 일하면 경영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탁월한 재무적 성과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속가능한 기업의 ‘문화’와 ‘시스템’을 만드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신과 추진력 때문에 그는 홈플러스 사장 시절부터 업계에서 ‘월급쟁이 사장이지만 오너처럼 경영하는 경영자’로 통한다.
○ 유통업계 신(新)가치…이번엔 ‘그린’이다
그런 이 회장이 최근 또 다른 가치 경영에 도전하고 나섰다. 이번에 제시한 목표는 ‘환경 경영’이다. 지난해 10월 경기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에 문을 연 여월점은 그가 추구하는 환경경영 요소들이 응축된 ‘그린스토어’ 1호점이다. 여월점은 ‘날 때부터 다른’ 건물로 지어졌다. 옥상 주차장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한 것은 물론 건물 전체에 태양광 창호 시스템을 적용하고 풍력발전 시설까지 갖춰 자연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했다. 매장 내부도 태양광을 조명으로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도시공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 회장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친환경적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렇게 지어진 홈플러스 그린스토어는 기존 점포에 비해 에너지 절감 효과가 40%,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는 50%가량 높다. 이 회장은 “기존 점포들을 여월점 같은 에너지 절감형 매장으로 ‘튜닝’하는 데 연 100억 원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달부터는 홈플러스 매장에 유통업계 최초로 ‘탄소성적표지제’ 인증을 부착한 상품도 선보였다. 상품을 만들 때 발생된 탄소량을 제품에 표시한 탄소성적표지제 상품은 환경보호와 녹색성장을 위한 기업의 공정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다. 선진국에서는 소비자들이 탄소배출량이 적은 제품을 선택함으로서 ‘그린운동’에 동참한다. 이 회장은 “앞으로 홈플러스 매장의 제품군에서 친환경 제품 비중을 더욱 늘려나갈 예정”이라며 “2013년 이후에는 어린이 환경학교와 홈플러스 환경경영연구소도 설립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내년까지 신세계 이마트를 제치고 할인마트 업계 1위에 올라서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올 들어서는 방송인 강호동 등 인기 연예인을 앞세운 TV 광고를 시작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10주 동안 일부 상품을 정상가격의 최저 30% 수준으로 판매하는 파격적인 창립 기념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시장엔 반드시 ‘이기는 게임(Winning Game)’이 존재합니다.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되는 방법을 찾아 집요하게 실행에 옮기면 목표는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