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돈이 꽤 많이 풀렸다는 사실이다. 실물에 비해 금융이 비대해져 생긴 모순을 다시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오늘의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돈 문제를 돈으로 푸는 세상’ 속에 자꾸 눈길이 가는 대상은 바로 ‘상품(commodity)’이다. 지금의 경제 여건에서 상품시장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첫째는 앞으로 물가에 대한 헤지(위험회피) 욕구가 상품에 대한 관심을 높여줄 것이란 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간 세계 주요 5개국의 유동성은 6∼8%의 속도로 늘어나다가 최근에는 전년 대비 12%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앞으로 모든 통화의 절대가치가 위협을 받게 될 주된 이유다. 아직은 신용경색으로 ‘돈맥경화’가 심하고 각국의 실업률이 높아 시중통화가 물가를 자극할 정도는 못 되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그 인플레이션이 순하든 강하든, 건강한 것이든 스태그플레이션이든 모든 투자자에게 물가위험의 관리를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둘째로, 세계 석유생산의 정점이 언제일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원유 수급은 빠듯해진다는 현실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세계 석유수요가 12% 늘어나는 동안 중국과 인도의 석유수요는 각각 51%와 20% 불어났다. 당장은 수요부진으로 가격반등에 한계가 있겠지만, L자형 경기조정 국면에서 석유 등 에너지상품은 방어적 개념의 투자대상이 될 수도 있다.
셋째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달러 약세에 따른 원자재 가격상승 압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풀린 미 달러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통화에 비해 가치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원자재 수출국도 같은 양의 원자재를 달러로 바꾸는 데 더 많은 달러를 요구할 것이다. 또 만약 다시 대외 적자폭이 커지면 미국은 아마도 달러 약세를 용인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려 들 것이다.
돈이 돌아 경제가 살든, 아니면 경제가 살아나 돈이 돌든 언젠가 돈은 돌 것이다. 석유나 구리, 옥수수를 집에 잔뜩 쌓아둘 수는 없어도 여기에 투자할 간접수단은 발달해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얘기는 역시 경기회복을 전제로 한 것일 뿐 세계경제가 다시 위기에 빠진다면 원자재는 여전히 ‘위험상품’일 뿐이다. 혹시 세계경제가 무기력해지거나 돈이 다시 돌지 않고 새로운 통화질서의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면 달러에 힘이 빠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일정량의 현금을 금으로 바꿔 놓는 것도 현명한 자산 지키기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