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 자신을 알아야할 때”
朴대통령 문화예산 증액 지시
전국서 유적 보전사업 등 펼쳐
박정희 시대는 성장주의의 그늘 밑에서 문화, 예술이 빛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미술 영화 연극과 같은 예술 분야에 예산 배정을 적게 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국회에 나갈 때마다 의원들에게서 사회개발과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예산 배정이 적다는 공격을 받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국방비가 일반예산의 35%를 차지하는 형편에서 자원 염출이 어렵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1977년 여름 예산국 직원을 데리고 청와대에 올라가 다음해 예산안의 개요를 보고했을 때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보고가 끝나자 대통령은 넌지시 나를 보더니, “부총리, 나에게 100억 원을 줄 수 없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디다 쓰시렵니까?” 하고 물었더니 문화 예술 진흥에 쓰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문화공보부는 1974년 이래 김성진 장관 주도하에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고 특히 박 대통령은 호국 전사 유적, 역사적 위인들의 유적 보수와 정화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지라 나는 문화공보부가 요구한 예산안을 한 푼도 깎지 않았다.
“문화공보부 장관이 추가적으로 요구한 27억 원을 전액 반영했는데요?”라고 말했더니 대통령은 “저런, 그것 가지고 되나?” 하며 장관의 소심함을 웃어넘기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어느 정도 경제 개발이 됐으니 이제부터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할 때가 왔다. 한국인 자신을 알자면 전통 문화를 되찾아야 하고 이 민족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조상들이 어떻게 외적과 싸웠고 호국 충성을 다했는가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앞으로 예산당국은 이 점을 고려해 주기 바란다.”
대통령의 말씀은 감동적이었다. 나는 “네, 알겠습니다.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담이지만 숫자를 조정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왜냐하면 혹시 대통령의 특별한 요구가 있을까 하여 약간의 여유자원을 감춰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8년부터 제2차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이 시작됐고 그해의 예산은 140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2배로 늘어났다.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전통 문화와 유적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몸소 유적지를 방문해 보수 공사 현장을 돌아보고 특히 가는 곳마다 조경(造景)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언제인가 유적지 조경 예산에 관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을 때 최각규 경제기획원 차관이 “대통령께서 전국을 조경하실 모양입니다”라고 푸념같이 말하던 일이 생각난다.
결과적으로 많은 문화사업과 유적 보존사업이 이뤄졌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1962년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됐으며 고전 국역(國譯) 사업, 정신문화원 창설, 현충사 중수, 경주의 종합개발 등이 추진됐다. 한산도 충렬사, 광주의 포충사, 700의총(사적 105호 지정), 행주산성, 세종대왕릉, 안동의 도산서원, 강릉의 오죽헌 등 유명한 유적치고 박 대통령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분명히 그것들은 국민의 민족적 긍지와 애국심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