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인천 남동구 '금융감독원 중소기업 현장금융지원반'에서 만난 최철수(58) 상담역은 "은행에서 일할 때와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를 묻는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금감원은 2월 전국 6개 산업공단에 중소기업 현장금융지원반을 만들어 각 지원반에 명예퇴직한 은행 지점장 두 명을 채용했다. 남동공단 현장금융지원반에는 기업은행 서시화지점장을 지낸 선석근(56) 상담역과 우리은행 남동공단지점장 출신 최 상담역이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금융기관과 거래하며 겪는 어려움을 상담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외면했던 기술력 있는 영세업체들
남동공단에는 기술력은 있지만 몇 천 만 원이 없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영세업체가 적지 않다. 두 상담역이 은행에서 근무할 때는 외면했고 지금도 각 은행들이 '실적에 도움이 안 된다'며 외면하는 곳들이다.
지난해 매출이 1억 원에 그친 한 기계설비 제조업체의 박모 사장(46)도 은행에서 추가대출을 받지 못해 상담을 신청했다. 박 사장은 몇 년 전 시세 2억5000만 원인 공장을 담보로 1억5000만 원을 빌려 절반을 갚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7000만 원이 추가로 필요해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대출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엔지니어 출신인 박 사장은 이 회사가 주문 제작할 수 있는 기계들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두꺼운 앨범 한 가득이었다.
최 상담역은 "담보가 충분하고 이미 대출을 일부 갚았는데 돈을 빌려주기 힘들다는 은행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 역시 지점장 시절에는 영세업체 대출을 잘 해주지 않았다. 영세업체 10곳을 상대로 영업하는 것보다 우량기업 한 곳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예퇴직 후 금감원 현장금융지원반에서 영세업체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최 상담역은 "우량 기업은 은행마다 영업 경쟁이 치열해 고객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며 "기술력 있는 작은 기업을 발굴해 키우는 것이 오히려 미래의 수익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은 그의 설득을 받아들여 박사장에게 추가대출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경제위기 땐 은행 공공성 강화해야"
30년 남짓 은행원 생활을 한 덕분에 두 상담역은 중소기업인의 고충을 들으면 은행이 지나치게 수익을 좇는 것인지, 아니면 회사가 부실한 것인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이날 지원반을 찾은 한 철강기계 제조업체의 고모 사장(49)은 "은행에서 담보가 부족하다고 하자보증서 발급을 안 해줘 수주 잔금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남동공단 인근에 땅이 있지만 산업공단 밖이라 공시지가가 낮다. 이 마저 전부 은행에 담보로 잡힌 상황. 이야기를 들은 최 상담역은 해당 은행에 전화를 걸어 "이 땅은 시가(時價)로 하면 가격이 꽤 나가는데 한 번만 더 보증서 발급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다. 최 상담역은 "지점장 전결로 이 정도 융통성은 발휘할 수 있는데 은행이 너무 원칙만 지키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에서 은행권에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이러다 은행 건전성이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선 상담역은 "은행은 공적 성격을 띤 사기업인데 경제위기 때 은행이 공공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어려워진다"며 "은행원들이 서류 위주의 기계적 대출심사에서 벗어나 방문상담을 하는 등 시간을 할애하면 유망한 영세업체를 발굴해 은행과 기업이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연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