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못구해 발구르는 中企아픔 생생히 목격”

  • 입력 2009년 5월 5일 02시 56분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 내 중소기업 현장금융지원반에서 일하는 최철수 상담역(왼쪽)과 금융감독원 홍숙표 반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운용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호소한 중소기업에 지난달 27일 직접 찾아가 심층 상담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동행한 본보 이지연 기자. 인천=홍진환 기자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 내 중소기업 현장금융지원반에서 일하는 최철수 상담역(왼쪽)과 금융감독원 홍숙표 반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운용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호소한 중소기업에 지난달 27일 직접 찾아가 심층 상담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동행한 본보 이지연 기자. 인천=홍진환 기자
금감원 中企현장지원반 활약

전직 은행지점장 동행 취재

실적압박에 우량기업만 지원

지점장시절이 후회스러워

작은기업 발굴이 미래 수익원

대출거절은행 직접 설득

“은행원 옷을 벗고 기업현장을 뛰어다니다 보니 어렵지만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서 은행, 기업, 지역경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은행 지점장 시절에 실적 압박 때문에 우량 중소기업에만 경쟁적으로 지원한 나 자신이 후회스럽다.” 지난달 27일 인천 남동구 ‘금융감독원 중소기업 현장금융지원반’에서 만난 최철수 상담역(58)은 “은행에서 일할 때와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를 묻는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금감원은 2월 전국 6개 산업공단에 중소기업 현장금융지원반을 만들어 각 지원반에 명예퇴직한 은행 지점장 두 명을 채용했다. 남동공단 현장금융지원반에는 기업은행 서시화지점장을 지낸 선석근 상담역(56)과 우리은행 남동공단지점장 출신 최 상담역이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금융기관과 거래하며 겪는 어려움을 상담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 외면했던 기술력 있는 영세업체

남동공단에는 기술력은 있지만 몇천만 원이 없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영세업체가 적지 않다. 두 상담역이 은행에서 근무할 때 외면했고 지금도 각 은행이 ‘실적에 도움이 안 된다’며 외면하는 곳들이다.

지난해 매출이 1억 원에 그친 한 기계설비 제조업체의 박모 사장(46)도 은행에서 추가대출을 받지 못해 상담을 신청했다. 박 사장은 몇 년 전 시세 2억5000만 원인 공장을 담보로 1억5000만 원을 빌려 절반을 갚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7000만 원이 추가로 필요해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대출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엔지니어 출신인 박 사장은 이 회사가 주문 제작할 수 있는 기계들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두꺼운 앨범 한 권이 가득 찼다.

최 상담역은 “담보가 충분하고 이미 대출을 일부 갚았는데 돈을 빌려주기 힘들다는 은행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 역시 지점장 시절에는 영세업체 대출을 잘 해주지 않았다. 영세업체 10곳을 상대로 영업하는 것보다 우량기업 한 곳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예퇴직 후 금감원 현장금융지원반에서 영세업체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최 상담역은 “우량 기업은 은행마다 영업 경쟁이 치열해 고객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며 “기술력 있는 작은 기업을 발굴해 키우는 것이 오히려 미래의 수익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은 그의 설득을 받아들여 박 사장에게 추가대출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 “경제위기 땐 은행 공공성 강화해야”

30년 남짓 은행원 생활을 한 덕분에 두 상담역은 중소기업인의 고충을 들으면 은행이 지나치게 수익을 좇는 것인지, 아니면 회사가 부실한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이날 지원반을 찾은 한 철강기계 제조업체의 고모 사장(49)은 “은행에서 담보가 부족하다고 하자보증서 발급을 안 해줘 수주 잔금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남동공단 인근에 땅이 있지만 산업공단 밖이라 공시지가가 낮다. 이마저 전부 은행에 담보로 잡힌 상황. 이야기를 들은 최 상담역은 해당 은행에 전화를 걸어 “이 땅은 시가(時價)로 하면 가격이 꽤 나가는데 한 번만 더 보증서 발급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다. 최 상담역은 “지점장 전결로 이 정도 융통성은 발휘할 수 있는데 은행이 너무 원칙만 지키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에서 은행권에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이러다 은행 건전성이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선 상담역은 “은행은 공적 성격을 띤 사기업인데 경제위기 때 은행이 공공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어려워진다”며 “은행원들이 서류 위주의 기계적 대출심사에서 벗어나 방문상담을 하는 등 시간을 할애하면 유망한 영세업체를 발굴해 은행과 기업이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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