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불안감 빨리 헤아려 적극 소통못한 것 아쉬워
실직자지만 실업자 아니야…농업에서 희망 보여줄터”
‘못 다한 이야기’ 책으로 집필 중인 정운천 前농식품부 장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누구든 해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외나무다리’였습니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1년을 맞아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만난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지난해 6월 정 전 장관은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세종로 시위현장에 나왔다가 ‘매국노’라는 비난 속에 입도 열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때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미 전 정권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구체적으로 약속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게 현 정권으로 넘어와 버린 것이죠. 정부 간에 약속까지 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죠.”
이렇듯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그는 “당시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좀 더 빨리 헤아리지 못한 점이 못내 후회된다”고 마음 아파했다. 국민의 우려를 일찍이 예측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차분히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정 전 장관은 지난 사태를 되돌아보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타결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배경 등 못 다한 이야기를 담는다. 지난해 말부터 펜을 들어 60%를 집필했다. 이르면 7월경 책을 공개할 생각이다.
○ 민주주의에는 ‘책임’이 따라야
“‘PD수첩’의 경우 언론의 ‘자유’만 외쳤지 ‘책임’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내용을 보도했으면 스스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자정(自淨)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어요. 그런 책임감을 안 보이니 고소를 하고 법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유에 따른 책임이 있을 때 민주주의가 한 단계 올라갑니다.”
우리 사회에 신뢰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준 사태라고도 지적했다. “2008년 미국에는 광우병 쇠고기도, 광우병에 걸린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광우병 우려를 선동하는 방송으로 ‘광우병 광풍’이 분 것은 바로 불신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신뢰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는데 신뢰를 깬 사람이 됐으니 모든 책임을 안고 (정부를) 나와야 했습니다.”
그는 신뢰 회복을 위해 소통의 중요성을 힘줘 말했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장관 때는 몰랐던 걸 깨달았습니다. 예전엔 우리가 정책을 발표하면 현장에서 이해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소통의 간극’이 엄청나더군요. 언론마다 각자 입맛에 맞는 사실을 전하니 소통의 ‘병목현상’이 있었습니다. 이럴수록 시장, 군수 등 집행주체와 중앙정부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소통을 최대한 많이 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점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이 양극단으로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정치적으로 변질시키는 바람에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망쳤습니다. 원래 촛불집회는 순수한 문화제였는데 어느덧 정치적 목적의 장(場)이 돼버렸죠. 국민들의 순수한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 협상의 ‘컨트롤 타워’ 부재가 문제
괴로웠지만 뼈저린 교훈도 얻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처럼 협상의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린 통상과 위생이 따로따로이다 보니 혼선을 일으켰습니다. 책임과 권한 소재가 분명하도록 체계적인 조직을 갖춰야 합니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농식품부 환경부 보건복지가족부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6개 부처에 분산된 식품안전 조직의 일원화가 지연되는 점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털어놨다. “최근 ‘신종 인플루엔자A’ 발생처럼 환경 변화로 식품 안전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광우병 발생 뒤 농장에서 식탁까지 체계가 일원화됐는데 우리는 아직도 6개 부처로 나뉘어 있어요. 일원화 개혁을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정 전 장관은 자신이 ‘실직자(失職者)’이지만 ‘실업자(失業者)’는 아니라고 했다. 장관에서 물러났지만 농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할 것이라고 했다. “‘실직자’는 있어도 ‘실업자’가 있을 순 없어요. 어떤 화가가 미술대학장을 그만둔다고 미술을 안 할 수 있나요. 국민들도 직을 떠났다고 두려워 말고 업을 찾아 하다 보면 길을 찾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농업에서 할 일을 찾아 국민께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작년에 저보다 더 많이 혼난 사람이 있나요. 그런 제가 이렇게 씩씩하게 업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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