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30>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입력 2009년 5월 5일 02시 56분


1976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가운데).
1976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가운데).
<30> 경제외교-영국과 스위스에서

英서 무역장관 등 만나 투자요청

스위스 PICA연설로 순방 마무리

‘4차 5개년 계획’ 58억 달러 확보

1976년 5월 19일 경제사절단은 런던으로 이동했다. 도착 즉시 에드먼드 델 무역장관과 회담해 원자력 발전, 부산 영도화력발전소, 철강산업, 기계 및 화학 공업의 투자계획을 설명하고 영국의 참여를 촉구했다. 델 장관은 의외로 비상한 관심을 보여 회의는 한 시간 반이나 계속됐다. 점심때는 배런 거론위로버츠 국무장관과 오찬을 같이했고 오후에는 데니스 힐리 재무장관과 회담해 금융 분야의 협력을 당부했다. 이들과의 회담에서 약 11개 사업에 대한 5억 달러가량의 협력자금은 확보된 셈이었다.

20일 오전에는 영국 경제인연합회(CBI) 주최 세미나에서 연설을 통해 한국의 경제 전망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투자사업을 상세히 설명했다. 또 “영국과 한국은 경제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상호이익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미국 일본 편향에서 벗어나 유럽 나라들로 경제관계를 다변화할 생각”이라고 부언했다. 오후에는 영국 수출보험국(EGCD)을 방문해 영국 업계의 한국에 대한 연불수출(延拂輸出·기계 등 대형 설비재의 수출 대금을 여러 해에 나누어 받는 방식)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로 전해인 1975년, 영국 피터 쇼어 국무장관이 한국을 다녀온 일도 있어 영국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이곳에서도 수억 달러의 자금조달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이곳 신문들의 논조를 보니 ‘한국이 오랫동안 국제금융시장에서 경계의 대상이 돼 왔으나 최근에는 여러 가지 개선 증후가 나타나고 있다. 남덕우 부총리의 이번 순방은 일본 및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국이 거대한 유럽 공동체 수출 시장의 상당한 몫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수입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5월 24일에는 마지막 순방국인 스위스로 갔다. 오후에 열린 대(對)아시아민간투자공사(PICA)에서 연설을 했다. 나는 “PICA가 대외투자 총액 중 6분의 1 이상을 한국에 배분해 온 것은 한국이 투자대상국으로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투자자의 권리 및 한국에서의 기업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제4차 5개년 계획이라는 상품을 팔러 온 나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났다.

27일 서울로 돌아와서 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4차 5개년 계획에 필요한 100억 달러의 외자 중 현재까지 58억 달러가 확보됐고 이번 순방을 통해 나머지 외자 조달에는 별로 문제가 없다는 전망과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이번 순방에서 나의 경제외교가 성과를 거둔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고도성장이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고 있었고, 때마침 세계 경제가 호전되고 있었으며 그에 더해 우리 경제기획원 실무자들과 재외 공관장들의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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