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석은 동아일보가 대우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등 27개 주요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올해 아파트 분양 실적을 조사해서 나온 것이다.
●건설사 12곳이 상반기 분양 '0'채 또는 '미확정'
조사 대상 건설사들은 지난해 상반기 총 5만3934채의 아파트를 공급했지만 올해는 4월까지 1만842채만 공급했다. 6월까지 분양할 계획인 물량을 합쳐도 총 2만6862채에 머물러 지난해 같은 기간의 49.8%에 그칠 전망이다. 또 조사대상 건설사 중 44.4%(12개)는 상반기 한 채도 분양을 할 계획이 없거나 아직도 구체적인 분양 물량을 정하지 못한 '미확정' 상태다.
건설사들은 이처럼 아파트 공급 물량을 이렇게 줄인 이유로 분양시장 침체(47.6%)를 꼽았다. 다음으로는 △금융권의 경직된 대출 움직임(23.8%) △사업 불확실성 증폭(16.7%) △정부의 규제 완화 움직임 미비(11.9%)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하반기의 경우 건설사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3만2576채)에 비해 물량을 48.6% 정도 늘려 잡아 총 4만8429채를 분양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본격적인 경기 회복 움직임이 안 보이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물량을 실제 분양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적지 않은 수의 건설사들이 올해 목표 분양치를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회복 시 아파트 값 폭등 우려
현재 주택 전문가들은 건설사들의 분양 실적 급감 현상이 빠르면 2, 3년 뒤에 심각한 아파트 부족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주요 건설사들이 경기침체와 경영난 등을 이유로 분양을 크게 줄인 게 2000년대 초반부터 나타난 아파트 가격 폭등 현상을 야기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전국주택매매가격은 전년대비 12.4%가 떨어졌다. 그러나 3년이 지난 2001년에는 전년대비 9.9%나 올랐고, 2002년에도 전년대비 16.4%나 올랐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한국인은 아파트를 다른 형태의 주택보다 훨씬 선호하는데 아직도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은 46%에 불과하다"며 "지금처럼 분양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경기회복과 이에 따른 주택수요 증가 현상이 나타나면 아파트 가격 폭등 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앞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소장은 "지방은 누적돼 있는 미분양 아파트가 많아 쉽게 주택 부족 현상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수도권은 잠재돼 있는 수요가 워낙 커 지금처럼 분양 물량이 급감하는 상황이 수년간 지속되면 향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건설사들이 분양 물량을 늘리기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5대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분양 물량이 올해처럼 줄어들면 향후 주택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누적돼 있는 미분양 아파트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로는 경기 회복시에도 분양 물량을 예전 수준으로 늘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방에 미분양 아파트가 많은 건설사는 재무적인 부담이 커서 경기가 풀려 수도권에 수요가 생기더라도 적극적으로 신규분양을 늘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조사결과 건설사들은 올해 상반기 주택시장의 체감경기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안 좋은 것으로 보고 있었다. 올해 상반기 주택시장의 체감 경기가 예상했던 것에 비해 '매우 안 좋다'와 '안 좋다'고 답한 건설사가 각각 14.8%(4개), 44.4%(12개)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좋다'가 답한 회사는 한 개뿐이었다.
하지만 하반기 주택시장 경기에 대해선 절반 가량이 상반기보다 좋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상반기보다 매우 좋아질 것'과 '상반기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건설사가 각각 3.7%(1개), 48.1%(13개)였다.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