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인수전 촉각
롯데그룹 참여 최대관심
롯데가 다시 한 번 ‘롯데정유’의 꿈에 도전할까. 최근 정유업계 일각에서 롯데그룹이 현대오일뱅크 인수를 통해 정유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매각을 둘러싼 국제중재재판소(ICC)의 본안 심리가 이달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것이 계기.
○ 정유업계 ‘뜨거운 여름’ 오나
7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의 2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은 1대주주인 IPIC(아랍에미리트 국영석유투자회사)가 수년 전부터 차익 실현을 위해 경영권을 포함한 오일뱅크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자 “주주 간 계약 위반”이라며 반발해 왔다. 본격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은 IPIC 등을 상대로 ICC에 매각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냈다. 자회사 2곳을 통해 현대오일뱅크 주식 70%를 보유하고 있는 IPIC는 이 가운데 20∼50%를 팔 계획이었지만 현대중공업의 제동으로 매각 작업은 중단된 상태. ICC는 이달 말 양측의 의견을 듣는 본안심리를 파리에서 갖고, 이번 분쟁의 해결 윤곽을 잡아나갈 예정이다.
이번 소송에서 현대중공업이 이기면 현대중공업 측은 IPIC의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우선적으로 매입할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재판부가 IPIC 측의 손을 들어줄 경우에는 제3기업을 대상으로 한 매각이 추진돼 이르면 하반기(7∼12월)부터 정유업계에서는 치열한 인수 물밑작업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인수전에 롯데 나설까” 관심 집중
IPIC의 지분 매각 추진이 한창이던 2007년 당시 관심을 보인 기업으로는 현대중공업 외에도 GS칼텍스가 있었다. GS칼텍스가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면 SK에너지를 제치고 정유업계 1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이런 인수전 구도가 앞으로도 유효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정유업계의 중론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GS칼텍스의 경우 현재 3조 원을 투입해 정유시설 고도화 작업을 하고 있는 데다 지주회사인 ㈜GS가 올 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발을 빼면서 어려움을 겪은 만큼 이전처럼 공격적인 인수에 나서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불어 최근 경기가 꺾이고 정유시장이 정체되면서 현대 측에서도 인수 신중론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롯데 “계획 없다” vs 업계 “두고 볼 일”
이런 상황에서 유력한 인수기업으로 롯데가 주목받는 이유는 롯데가 예전부터 유화산업과의 시너지효과를 위해 정유사업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호남석유화학과 KP케미칼을 보유한 국내 2위의 유화기업이다. 현재 롯데는 유화사업의 원료 전량을 해외정유사와 에쓰오일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유사 인수로 원유를 직접 정제할 수 있게 되면 유화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돼 시너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실제 롯데는 2006년 에쓰오일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가 가격 등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새로운 정유사 인수 가능성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사업 시너지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롯데의 OB맥주 인수도 불발된 만큼 해당 자금을 정유사 인수로 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올 초 롯데가 세운 유화부문 매출목표 40조 원 달성은 정유사업 진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