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도토리’ 경제자유구역

  • 입력 2009년 5월 11일 02시 57분


홍콩 인근의 선전(深(수,천))은 1979년 경제특구로 될 때까지는 중국의 여느 시골과 다름없는 황량한 벌판에 지나지 않았다. 특구로 지정된 후 외국 기업들이 몰려들었고 이후 20년 동안 연평균 30%의 성장을 기록했다. 선전은 비싼 외제차가 많기로 유명하고 물가도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현대도시로 발전했다. 다국적 기업의 위력을 확인한 중국은 이후 특구를 늘려 지금은 약 140개의 각종 특구를 개발했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맺은 열매들이다.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을 무기로 중국은 세계 주요 기업의 공장을 빨아들였다. 한국에 투자하려던 기업들은 중국으로 방향을 돌렸고 한국 기업들도 우르르 몰려갔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집권 이후 이런 추세는 더 빨라졌다. 한국 정부와 사회가 외국 자본에 배타적이라는 인상을 준 것이 한몫했다.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들의 과격하고 정치적인 노동운동이 외자를 더 멀리 내쫓았다. 이 바람에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지역 주요 국가에 비해 외국 기업의 투자가 한참 뒤졌다. 지난 정부 시절 세계 경제 호황의 혜택도 못 누리고 일자리도 줄어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정부는 외자를 유치한다며 경제자유구역 정책을 들고 나왔다. 2003년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이 지정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작년에도 황해(경기 충남) 대구-경북(지식창조형) 새만금-군산(전북) 등 3개가 추가돼 모두 6개의 경제자유구역이 개발 중이다. 하지만 외자 유치는 중국보다 부진하다. 세금 혜택도 적고 교육 의료 등 외국인이 와서 살 만한 생활 여건도 부족하다.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가 됐으니 강원과 충북 지역만 빼고는 각 도가 경제자유구역을 갖게 됐다. 대개 물류와 첨단 서비스산업을 망라하는 복합개발 전략을 갖고 있어 별 특징이 없다. 첨단산업과 관광레저산업은 감초처럼 들어 있다. ‘도토리 키 재기’식 경제자유구역으로 외자 유치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중복 투자만 하고 정작 외국 자본은 외면한다면 경제자유구역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아까운 세금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경쟁력이 없는 곳은 과감히 퇴출시킬 필요가 있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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