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37>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사우디아라비아는 2차 석유 파동이 난 후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국에 석유를 추가로 공급했고 한국은 새마을운동을 하는 농민을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했다. 한국을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우디아라비아는 2차 석유 파동이 난 후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국에 석유를 추가로 공급했고 한국은 새마을운동을 하는 농민을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했다. 한국을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동아일보 자료 사진
<37> 대통령특사로 중동에 가다

쿠웨이트-카타르와 협상 퇴짜맞고

사우디서 “새마을 농민파견” 요청

원유 5만배럴 추가공급 약속받아

1979년 1월 경제특보로 임명된 후 불과 10개월 동안에 나는 자주 해외 출장을 가야 했다. 2월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주최하는 ‘선진개발도상국가의 현황과 80년대의 전망’을 주제로 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독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를 만나 그의 개회 연설을 들었고 나는 ‘선진공업국과 80년대의 전망’이라는 주제연설을 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대표적 선진개발도상국으로 인식돼 있어서 나를 회의에 초청한 것이다. 나는 연설에서 개도국의 선진국에 대한 수출 신장이 선진국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통계적으로 반증하고 1980년대에는 선진국과 후진국 양측이 다 같이 무역자유화의 방향으로 정책적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3월에는 대통령특사로 중동 3국을 방문하게 됐다. 원유의 추가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제2차 석유파동으로 석유가격이 올랐을 뿐 아니라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불투명해졌다. 동력자원부가 1일 5만 배럴의 원유를 추가적으로 확보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대통령은 나를 중동 산유국에 특사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먼저 쿠웨이트와 카타르를 방문해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고 교섭에 들어갔으나 쿠웨이트의 석유장관은 한국이 석유를 미국의 엑손, 모빌, 텍사코와 같은 주요 석유회사를 통해서 구입하지 말고 쿠웨이트와 직접 거래하는 체제로 전환하면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주요 석유회사와 거래를 끊으면 기존의 공급 루트가 일시에 와해돼 석유를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협력 방안을 강구하자는 말을 남기고 카타르로 갔으나 여기에서도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갔다. 과연 석유왕국이어서 해수를 담수화해 스프링클러로 물을 줘 궁전과 시가지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다른 나라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먼저 셰이크 야마니 석유장관을 만나 용건을 이야기하고 해안가를 산책했다. 그는 바닷물 속에서 자라는 식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로 옆의 바닷물 속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식물을 발견한 나는 이를 가리키며 “바로 여기에 있지 않느냐.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날 오후 파드 왕세자를 예방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용건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호의적으로 대답하고 뜻밖에도 한국에서 새마을운동을 하는 농민 몇 사람을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해 줄 수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귀국 즉시 대통령에게 말씀드려 꼭 보내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기쁜 마음으로 궁전에서 물러나왔다. 곧바로 유양수 대사는 석유부 실무자들과 협상해 1일 5만 배럴의 추가 공급계약을 얻어냈고 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답서를 갖고 귀국길에 올랐다. 왕의 친서는 매우 정중했고 “각하의 친서에서 언급한 원유 분야에 있어서 특별한 배려를 할 것임을 각하께 다짐드리고자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대통령에게 귀국 보고를 하고 새마을운동 농민 파견을 건의했다. 이후 양국 실무자 간 협의를 거쳐 농민 17명을 파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원은 확실치 않다. 후일 들은 바에 따르면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식목 관리에 종사하며 좋은 대우를 받다 대부분은 돌아왔으나 몇 사람은 그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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