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럽업체 급부상,친환경 표준경쟁 치열
브랜드파워가 승부 갈라
세계 자동차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 등 미국 업체들이 위기에 몰린 사이 피아트와 폴크스바겐 등 유럽 업체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후발 주자가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자동차업계의 세계적 위기 속에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14일 국내 전문가 4명이 3개씩 뽑은 키워드를 통해 이번 자동차시장 재편 움직임의 특징과 한국 자동차기업이 나아갈 바를 정리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기업이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인 도약을 해야 하며 우선 노사문화를 선진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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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힘든 싸움 벌어진다”
김기찬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은 △원가경쟁력 △경쟁자의 교체 △친환경차의 표준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꼽았다. 원가경쟁력은 제품경쟁력이 뛰어나도 생산비용이 높은 기업은 도태된다는 의미다. 미국의 ‘빅3’ 업체가 몰락한 이유 중 첫 번째가 고비용 구조라는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기업의 ‘주적’인 일본 및 중국의 자동차기업과 함께 새롭게 떠오르는 피아트는 탄탄한 가격경쟁력을 갖춘 데다 이익을 내는 분야도 소형차와 신흥 시장으로 한국 기업과 겹친다. 앞으로 더 힘든 싸움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김 회장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연구개발과 변화의 속도에서 비교적 튼튼한 편이지만 기업 투자에 불확실성을 주는 노사문화를 바꿔야 원가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높일 수 있다. 김 회장은 친환경차 시장에 대해서는 “기술에서 앞서가는 업체보다 ‘표준’을 주도하는 기업이 승리할 것”이라며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 △유럽 기업보다는 일본 기업 △2군 그룹에서의 경쟁 심화 등을 키워드로 꼽았다. 이 박사는 “지금 시장 재편을 이끌고 있는 피아트와 폴크스바겐이 추진하는 양적 성장에서 두 회사가 얻을 성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보다는 구조조정을 마치고 난 뒤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행보가 더 두렵다는 것이다.
○ ‘몸집 불리기’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이 박사는 앞으로 자동차업계가 일본 자동차업체들과 BMW를 주축으로 하는 ‘1군’과 피아트, 폴크스바겐, 르노-닛산, 현대·기아차, GM, 포드 등이 포함되는 ‘2군’으로 나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박사는 “2군 그룹에서 1군으로 올라가기 위한 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지수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몸집 불리기 △대표 차(key vehicle) △브랜드 파워 제고 등을 꼽았다. 유 교수는 “현재 폴크스바겐과 피아트가 몸집 불리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이 박사와 같은 의견을 냈다. 유 교수는 “부가가치가 있는 대표 핵심 차종을 만들어야 하며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한 프리미엄급 차량도 세계 시장에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영석 한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권토중래(한때 위기였던 피아트와 폴크스바겐의 부상) △전통적인 자동차시장(현대·기아자동차가 상당한 경쟁력이 있음) △전략적 변곡점 등을 꼽았다. 현 교수는 “30, 40년의 큰 주기를 생각해볼 때 1970년대 초반의 오일 쇼크가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부상하는 발판이 됐다”며 “이번 세계 경제위기는 중국 업체들이 떠오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