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모든 현상과 재료는 양면성이 있어 어떤 호재나 악재라도 완전히 홀로 서 있지는 않다. 가령 환율만 봐도 3월 초 원화 값이 달러당 1600원 선을 위협할 때에는 그 자체가 3월 위기설의 단초가 된 두려운 악재였지만, 결국 이런 고환율이 우리 경제에 원화 표시 매출 증대와 무역수지 흑자를 만들어줬다. 이후 다시 원화가 1200원 선에 근접하니 이제는 환율이 골칫거리가 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경기부양책도 마찬가지인데 그간 지구촌 전체에 돈이 많이 풀려 그 자체가 유동성 봇물의 호재가 됐고 재정지출이 경기회복의 첨병 역할을 해줬지만, 앞으로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 서서히 악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가 회복되는데 원화 가치는 저평가된 상태로 남아 있고, 기업이익은 느는데 물가나 이자율, 유가는 오르지 않고 기업 이자비용이나 원가 부담도 늘지 않는 꿈같은 조합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돈을 많이 찍으면 물가는 뛰고 돈을 아끼면 물가는 잡혀도 디플레이션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모든 재료가 ‘양날의 칼’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더욱이 지금 미국처럼 경제 주체들이 과도한 빚을 지고 있고 은행은 여전히 부실더미에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만일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 상승과 외국 자본의 이탈, 금리 부담, 대외채무 상환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달러가 강해지면 가뜩이나 어려운 미국경제에 무역적자 부담만 느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 오늘의 냉정한 현실이다.
시장재료와 경제환경의 상충성은 각 나라 간에도 극심하다. 유사 이래 글로벌 경제가 가장 많이 개방되고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미국은 달러 값이 떨어지고 주택대출금리가 오르면 곤란을 겪지만 영국과 일부 신흥국은 달러 가치가 오르고 달러 구하기가 힘들어지면 거시정책 운용이 꼬인다. 또 유가 급등은 중국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러시아에서는 유가가 떨어지면 경제정책을 풀어가기가 힘들다.
이런 상충관계의 퍼즐이 풀리고 글로벌 증시가 행복해지려면 아직 글로벌 구조조정과 부실정리라는 눈앞의 일들이 좀 더 남아 있는 듯하다. 결국 ‘경제에 공짜’가 없다는 속설은 아무리 곱씹어 봐도 맞는 얘기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