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항공업계에서 한국인은 가장 까다로운 손님으로 손꼽힌다. 예의를 극도로 중시하는 데다 승무원들의 협조 요청을 잘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덕분에 한국인이 많이 타는 국내 항공사의 기내 서비스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아시아나항공은 2007년과 지난해 2년 연속으로 세계적 항공 서비스 평가기관인 영국 스카이트랙스로부터 ‘5 STAR’ 항공사에 선정된 데 이어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항공전문지 ‘ATW(Air Transport World)’의 2008년 ‘올해의 항공사’에 선정됐다. 여객서비스뿐만 아니라 운항과 안전, 정비 등 항공분야 전반에서 아시아나항공이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은 것이다. 비록 규모로 따지면 아시아나항공은 전 세계 30위권(매출액 기준)에 그치지만 서비스로는 이미 정상급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김 상무가 아시아나를 택한 이유는?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상무(50)는 해외출장을 자주 다닌다. 매달 출국할 때마다 다양한 국적의 항공사를 이용하는 김 상무에게 아시아나항공의 탑승 체험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김 상무는 아시아나항공의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를 탔다. 해외 국적 항공사의 출국시간이 더 가까웠지만 최신형 주문형 오디오비디오시스템(AVOD)을 즐기고 싶어 일부러 아시아나항공을 택했다. 공항 카운터에 물어보니 해외 항공사의 비행기는 AVOD가 장착되지 않은 구형 기종이 상당수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로스앤젤레스 노선에 투입된 B777-200을 비롯한 전 기종에 AVOD 모니터 화면을 넓히고 좌석을 바꾸는 등 올해 2월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마쳤다. 아시아나항공 공항서비스기획팀 박동운 과장은 “요즘 장거리 노선을 이용하는 승객 상당수는 기내 편의시설을 미리 알아보고 예약을 결정한다”고 전했다.
공항 카운터에 들러 출국장 안에 들어선 김 상무는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아 아시아나항공 고객 라운지를 찾았다. 출출한 터에 마침 조리사가 직접 요리한 쌀국수를 내는 ‘셰프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허기를 달랜 뒤 잠깐 눈을 붙이러 들어간 수면실에서 김 상무는 전신안마기로 긴장을 풀었다. 라운지에서 조리사가 직접 요리한 음식과 전신안마를 제공하는 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에선 아시아나항공밖에 없다.
라운지에서 나온 김 상무는 곧바로 항공기에 올랐다. 이륙 직후 승무원이 식사별 칼로리가 꼼꼼하게 적힌 메뉴판을 들고 왔다. 한식을 포함해 세 가지 메뉴. 김 상무는 다이어트를 위해 영양쌈밥과 생선요리보다 칼로리가 낮은 등심스테이크(324Cal)를 골랐다. 식사를 마치고 잠을 청하기 위해 좌석을 수면모드로 설정했다. 정확히 166도까지 꺾이는 좌석 덕분에 거의 침대에서 자는 것처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누워서 얼핏 보니 서비스시간이 아님에도 승무원들이 자주 기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외국 항공사에선 승무원들이 음식 제공 등 서비스 시간 외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아 일일이 호출버튼을 눌러야 한다. 김 상무는 번거롭고 미안한 마음에 목이 말라도 그냥 참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 철저한 서비스 품질 경영
아시아나항공의 기내 서비스는 철저한 평가와 지속적인 개선 시스템으로 항공업계에 정평이 나있다. 고객을 가장 먼저 접하는 공항서비스 현장에선 ‘서비스 질 매니저(SQM·Service Quality Manager)’가 매일 카운터를 돌면서 직원들을 평가한다. 또 항공 서비스의 핵심인 승무원 서비스에선 캐빈 매니저(Cabin Manager)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서비스를 책임지는 ‘캐빈매니저 실명 책임서비스’ 제도를 운영한다. 이에 따라 캐빈 매니저로부터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승무원들은 사내 ‘서비스 클리닉’에 불려가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철저한 브랜드 관리로 후발업체 핸디캡 극복
아시아나항공은 인적 자원과 더불어 각종 시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예약부터 발권, 수하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예컨대 아시아나항공은 2000년 10월 인터넷에서 직접 좌석을 선택할 수 있는 ‘사이버 체크인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올해 1월부터는 인터넷으로 탑승권 출력(발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예약·발권 부문에서 커다란 혁신을 가져왔다. 수하물 부문에선 지난해 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내선 전 노선에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로 화물 도착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다 인천공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라운지를 운영해 호평을 받고 있다.
항공사의 최대 자산인 항공기에도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2006년부터 올해 2월까지 7000만 달러(약 889억 원)를 들여 항공기 16대를 업그레이드 하는 한편 지난해에는 새 항공기 6대를 도입했다. 이와 함께 차세대 기종으로 A350XWB를 선정해 2016년부터 30대를 들여올 계획이다.
○ 그녀의 이름은 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의 브랜드 관리전략은 후발업체의 불리함에서 시작됐다. 1988년 2월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어 국내 복수 민항체제를 연 아시아나항공은 안전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창사(創社)와 함께 캐빈 서비스 훈련센터를 만들어 기내 서비스 향상에 주력하는 동시에 ‘새 비행기로 모시겠습니다’(안전성), ‘그녀의 이름은 아시아나’(서비스)라는 광고문구로 경쟁업체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이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1999년부터는 ‘아름다운 사람들’ 광고 시리즈를 통해 안전과 서비스를 아우르는 전문화된 항공업체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특히 1998년 당시 항공사고가 잇따르자 “새 비행기는 아시아나의 고집입니다”, “비행기 나이 물어보고 탑시다”, “아시아나 하면 새 비행기가 생각나신대요” 등의 문구를 광고에 집중 배치해 효과를 보기도 했다. 최근에는 각종 국내외 평가에서 아시아나항공이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월드 클래스 서비스’나 ‘ATW 수상’ 등 프리미엄 이미지 위주로 광고전략을 수정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2개 부문 심사… 선정기준 까다롭기로 소문나▼
ATW ‘올해의 항공사’ 賞은
올해 1월 아시아나항공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항공업계에서 처음으로 항공전문지인 ‘ATW(Air Transport World)’가 선정하는 2008년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된 것.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ATW의 ‘올해의 항공사’ 상을 최고의 인지도와 권위를 가진 상으로 꼽을 정도로 유명한 상이다. ‘항공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릴 정도다. 1974년 제정된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싱가포르항공과 전일본항공(ANA), 홍콩 캐세이항공, 일본항공(JAL) 등 4개 회사만이 이 상을 받았다.
ATW는 미국 워싱턴에 본사를 둔 항공전문 월간지로 항공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항공 관련 종사자들이 주요 구독 대상으로 현재 약 3만8000명이 정기 구독하고 있다. 1974년 이후 매년 전 세계 항공사를 대상으로 12개 분야별 우수 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 한편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항공사 한 곳을 따로 정해 ‘올해의 항공사’ 상을 주고 있다. ATW의 항공 전문가들이 협의와 실사를 통해 수상 기업을 선정한다.
국내 항공사 가운데는 대한항공이 ATW로부터 2002년 ‘화물항공사 부문’ 상과 2006년 혁신을 인정받아 ‘피닉스상’을 받은 일이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1996년 ‘시장개척 부문’ 상과 2001년 ‘승객 서비스 부문’ 상을 받았다.
ATW가 ‘올해의 항공사’를 선정하는 기준은 상당히 까다롭다. ATW는 선정 평가 항목으로 △모범적인 서비스 △안전 운항 기록 △신규 시장 개척과 혁신적인 서비스 △선도적인 신기술 적용 △지속적인 흑자 경영 실적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 이전에 ATW 부문상을 2개 이상 수상한 실적이 있어야 ‘올해의 항공사’가 될 수 있다.
ATW는 아시아나항공을 선정한 이유로 △기내 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 △화물 서비스에 전자 태그를 부착하는 등 첨단 기술 도입 △영국 항공 산업 평가기관인 스카이트랙스사(社)로부터 5성(星) 항공사로 선정돼 객관적으로 서비스 품질을 인정받은 점 등을 꼽았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