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광고모델=브랜드 이미지

  • 입력 2009년 5월 16일 02시 54분


지상현 교수가 개발한 사상공간과 모델 이미지. 모델의 인상을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4개 인상으로 분류했다. 브랜드 인상도 이처럼 분류해 대응할 수 있다.
지상현 교수가 개발한 사상공간과 모델 이미지. 모델의 인상을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4개 인상으로 분류했다. 브랜드 인상도 이처럼 분류해 대응할 수 있다.
첫인상 평가법으로 답 찾는다

‘장자연 리스트’로 세간이 시끄러웠다. 풍문의 진위야 두고볼 일이지만 잊고 지냈던 풍토 하나가 떠오른다. 필자도 오래 전 기업의 광고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모델 물색을 해본 적이 있다.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추린 10명 정도의 사진을 경영진에게 보여주고 낙점을 받았는데, 대개는 경영진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모델이 선택되곤 했다. 그렇다고 그 이상의 무슨 일이 있었다는 얘긴 아니니 오해 마시길. 그저 모델 선정이 그렇게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것뿐이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도 한 여성 연예인이 한 해에 17개 기업에 광고 모델을 선 것을 봤으니까. 그중 두 기업은 서로 경쟁관계였다. 이래서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는커녕 경쟁기업 광고를 해주기 십상이다.

국내에서 중시하는 모델 선정의 기준은 선호도와 유명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모델의 이미지다. 모델의 이미지는 브랜드 이미지로 그대로 연결된다.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들의 숨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소비자와의 심리적 끈을 만들어낸다. 많은 마케팅 전문가들이 이 심리적 끈이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에서 가장 안정적인 관계를 만든다고 말한다. 단순히 모델의 유명도와 선호도만을 중시해서는 제품의 유행이 지나가거나 단종되면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도 급속히 약해진다.

국내 기업들이 이 대목에서 약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인 듯하다. 하나는 특정 이미지에 얽매일 경우 목표시장이 제한된다는 두려움, 다른 하나는 스스로 희구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브랜드 이미지가 무엇인지 이해하면 한꺼번에 답이 나올 문제다. 국내 10대 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의 정례모임에서 매년 기업 이미지를 조사했는데 S기업은 조직력, H기업은 추진력, D기업은 국제화 이미지가 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런 항목들은 기업이나 브랜드 이미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컨대 건설업이 주력인 H기업에서 전자사업을 한 적이 있는데 왠지 기업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추진력이 강한 이미지 때문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거칠고 남성적이며 활달한 이미지 때문이다. ‘추진력이 강하다’와 같이 지엽적인 단일 척도로는 이런 전체적인 이미지를 짚어내기 힘들다.

브랜드 이미지는 누구나 갖고 있는 인상형성 기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보면 부지불식간에 ‘순하게 생겼다’ ‘착할 것 같다’ ‘얌체 같다’ 등의 인상을 느낀다. 이런 인상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는 오랜 과정에 내면화된 일종의 정보처리방식으로 종종 동물이나 자연에도 작동되곤 한다. 하물며 사람들이 모여 이뤄진 기업이나 그 기업의 소산인 브랜드에 작동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래서 인간의 인상형성 기제를 구성하는 인상평가 항목들을 파악하면 브랜드 이미지를 구성하는 하위 이미지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변화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여럿 개발돼 있다. 뉴질랜드 포커스그룹의 ‘니드스코프(Needscope)’,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인상 공간’ 등이 그런 예다. 이 도구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모델의 이미지를 평가하고 분류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인상평가 항목들을 이용해 브랜드의 인상, 즉 이미지를 측정하는 일은 소비자의 심리적 욕구를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누구나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인상이 있다는 말이다. 특정 인상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는 그 이미지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을 암시한다.

특정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특정 소비자와의 관계만을 중시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비슷한 심리적 욕구를 갖고 있다. 개인에 따라 강약이 있고 때에 따라 조금씩 변할 뿐이다. 점쟁이가 하는 말이 모두 내 이야기 같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특정 심리적 요구를 교두보로 삼아 전체 시장에 접근한다는 것이지 특정 시장만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아니다. 광고란 이런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이다. 이 커뮤니케이션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광고모델인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모델을 주먹구구식으로 막연하게 선정해도 되는 걸까.

지상현 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 psyj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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