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빌린 주택담보대출 자금의 60% 이상이 생활비로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주택담보대출이 늘면 투기 세력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생활고 때문에 집을 담보로 은행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동아일보가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용도를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1∼3월)에 증가한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상당수는 주택 구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활비나 사업자금으로 쓰기 위한 ‘생계형 대출’이었다. 경기침체로 장사가 잘 안 되는 자영업자나 가장(家長)이 실직한 가계가 당장 쓸 생활비나 교육비를 조달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번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올해 1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4조4107억 원 중 주택구입 용도는 1조7009억 원으로 전체의 38.6%였다. 나머지 2조7098억 원(61.4%)은 비구입자금으로 주로 가계생활자금 목적으로 대출된 것이다. 하나은행도 올해 1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1조3000억 원 중 주택구입 용도 비중은 25%(3250억 원)에 그쳤고 나머지 75%(9750억 원)는 가계생활자금으로 사용됐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모두 주택 비구입자금 용도로 대출해준 비중이 작년 1분기에 비해 각각 11.3%포인트, 16%포인트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4조7980억 원으로 1월보다 3조3163억 원 증가해 월별 증가규모로는 2006년 11월 이후 최대치였다. 이를 두고 경제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징후로도 볼 수 있지만 개인의 생활자금 및 사업자금 수요가 가세하면서 대출 규모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생활 자금뿐 아니라 주식 투자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달 초 본보 취재 기자와 만난 회사원 서모 씨(37·서울 양재동)는 “금리 하락으로 이자 부담이 줄었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 가격이 많이 떨어진 우량주에 투자해볼까 생각 중”이라며 “직접 투자로 펀드 손실을 만회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비와 주식투자 용도로 사용하는 가계가 늘면서 대출 부실 정도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건전하지 않은 유동성의 확대는 경기 회복 기대감이 약화되는 시점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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