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서비스업 더 커져야 경제성장률 높일수 있어
“부실채권 매각에 따른 이익을 은행에 사후 정산해주는 방식을 도입하면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3월 취임한 김태준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은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구조조정이 더딘 듯 보이지만 방법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산관리공사가 부실채권을 은행으로부터 헐값에 인수하는 경향이 있어 은행이 부실기업 정리를 늦추려 하는 만큼 은행에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금융시스템에 부담을 주는 부실채권 정리는 운용의 묘를 발휘하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단기 유동성이 800조 원을 넘어선 것과 관련해 “유동성 자체가 넘칠 정도로 많은 것은 맞다”면서도 “시중 자금이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금융위기 이후를 대비한 장기 과제로 내수산업 육성을 꼽았다. 선진국에 가까워질수록 수출만으로 먹고살기 힘든 만큼 교육 의료 등 국내 서비스업을 키워야 위기가 끝난 뒤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당장 수출을 줄이고 내수를 늘리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키우는 가운데 내수 부문의 생산 증가율이 더 높아지도록 지원하는 산업별 비중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수 분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 국가경쟁력이 되레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하자 “쌀(우량기업)이 겨(부실기업)보다 많기 마련”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부실기업이 생길 수 있지만 정책의 방향만 잘 잡으면 시장을 선도하는 좋은 기업을 대거 배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금융회사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선 “한은이 거시경제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큰 틀에는 동의하지만 수단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이보다 급한 숙제가 많은 만큼 지금 결론을 서둘러 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취임 직후 일각에서 ‘너무 친정부적이어서 독자적인 정책 비판을 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둔 듯 그는 “내부에선 지금도 각종 정책의 한계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며 “미리 문제점을 짚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도록 돕는 게 연구원의 역할이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가 정책이 정해진 뒤에야 정부와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국가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