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도 사람 안자른다’ 공개선언 LG, 매출 늘었다

  • 입력 2009년 5월 25일 03시 05분


“(경제가) 어렵다고 사람 내보내면 안 됩니다. 어렵다고 사람 안 뽑으면 안 됩니다.” 지난해 11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이런 경영방침을 전달했다. LG 안팎에서 ‘회의론’이 크게 일었다.

LG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은 “당시의 솔직한 심정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내에서 강한 반대 의견을 펴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미국 일본의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도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며 불황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다른 대기업의 시선도 싸늘했다. 한마디로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요즘. LG그룹은 이런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LG는 24일 “14개 상장 계열사를 합친 그룹 전체의 1분기(1∼3월) 매출이 27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26조900억 원)보다 1조6100억 원(6.2%) 증가했다”고 밝혔다. LG의 한 임원은 “물론 원화 약세 효과를 본 측면도 있지만 세계적 경기침체와 계절적 비수기라는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라며 “올해 사상 최대 매출 목표인 116조 원 달성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기 LG전자 부사장(지원부문장)은 “‘인위적 감원(減員) 없이 이번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큰 방향이 정해지자 임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졌고 그것이 다양한 혁신의 성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LG전자의 경우 사무직과 연구개발(R&D) 인력의 20%인 4000명을 신규 사업 창출, 생산성 개선, 비용 절감 방안 등을 찾아내는 태스크포스(TF) 업무에만 전념하도록 대대적인 ‘조직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불황 속에서 인력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이렇게 꾸려진 TF팀은 500개다.

LG전자는 또 공급망관리(SCM)를 통한 물류 혁신으로 1분기에만 900억 원을 절감했다. 올해 예상 절감액은 4000억 원 이다.

LG화학은 지난해 투자액보다 35%나 늘어난 8624억 원의 투자 계획을 세우면서 그 절반 이상(4656억 원)을 배터리 등 정보전자소재분야에 쏟아 붓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그 덕분에 LG화학의 1분기 영업이익(4800억 원)은 지난해 동기 대비 34.6%나 늘어났다. LG텔레콤과 LG디스플레이 등 다른 계열사들도 인력 감축 없이 과감한 투자와 차별화된 서비스 등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에서 LG의 상대적 선전(善戰)을 ‘성공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LG계열사의 한 CEO는 최근 내부 회의에서 “대표적 경쟁 상대인 일본 기업들이 대규모 감원 등으로 체질 개선을 하는데 이것을 기업 간 경쟁력으로 따지면 3∼5%의 영향은 있는 것 같다. 일본과 싸우려면 LG도 더욱 담금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피력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들은 “최종 결과를 속단하기 이르지만 LG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인적 구조조정 없는 위기 극복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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