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사좌대중 이공수의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들어갔다. 그 후 귀국길에 길가에서 목화나무를 처음 보고는 그 씨앗 여러 개를 가져왔다. 갑진년에 진주로 가져가서 그 절반을 장인 정천익에게 배양하게 하였는데, 단 한 포기가 싹터서 자랐다. 가을이 되어 정천익은 그 씨앗 백여 개를 얻었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에 대한 태조실록 기록의 일부분이다. 이 책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반출이 금지된 목화씨를 몰래 붓대에 숨겨 들여왔다는 통설을 실마리로 삼아 그 이후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잘 아는 이야기지만 저자는 이를 경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 역사가 현대 경영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원나라에서 돌아온 문익점은 벼슬도 사양하고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돌아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 재배에 성공해 그 씨앗이 전국으로 퍼지게 한다. 문익점의 고향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배양마을에는 ‘면화 시배 사적비’가 있다.
“정미년 2월에 환국하여 소거하신 배양리에 수식하니 처음은 땅의 성질을 몰라, 조습을 가려 심고 그 영고를 보아 배양의 묘를 얻어 3년 만에 번성하여 드디어 전국에 퍼지니….”
저자는 문익점이 장인과 함께 목화씨를 재배하는 과정을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을 개발할 때와 비슷하다고 본다. 기술 제휴한 외국 기업들이 반도체 제조 과정상의 중요한 노하우를 가르쳐 주지 않아 수천 번 시행착오 끝에 개발에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지 200여 년 후 일본에도 목화씨가 전달되었다고 보고 한국과 일본의 목면업을 비교하고자한다. 조선은 목화씨를 홀대해 더 발전시키지 못하는 반면 일본은 의류생활은 물론 화승총의 심지나 돛으로 쓰며 오히려 조선 침략의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본다. 개항 전후에는 일본의 방직 기술이 급격히 발전해 조선 면업을 초토화시켰다. 저자는 일본의 방직 기술이 도요타자동직기회사의 직기 기술로 계승되었고 이것이 도요타자동차의 전신이었다고 본다.
저자는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가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목면업이라는 산업으로 성장 진화했는지 살핀 결과 한국 경제와 기업의 도약을 위한 제언을 내놓는다. 현재의 시점에서 문익점의 목화씨는 한국 경제와 기업 경영에 새로운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문익점의 목화씨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그리고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연결하는 저자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소설가가 아니라 경제사학자라면 이런 추리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