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빚더미 딛고 ‘무차입’ 실현
부부-父子-형제 직원 많기로 유명
세계 1,2위 파산… 정상노크 기회
1960년대 한국도자기는 살인적인 사채 금리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이었다. 당시 이 회사는 연 매출의 30%가 넘는 돈을 매년 이자 갚는 데 썼다.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빚을 갚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채 압박이 심했다. 너나없이 일단 자금부터 빌리고 보던 고도성장기, 회사를 키우기 위해 은행 이자보다 비싼 사채를 끌어다 썼지만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기업 발전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한국도자기는 1960년대 내내 뼈를 깎는 노력으로 회사의 모든 역량을 ‘빚 갚기’에 집중했다. 김동수 회장은 마지막 대출까지 모두 갚았던 1973년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무차입 경영을 시작했다. 그때가 1943년 청주지역의 작은 도자기 공장에서 출발한 한국도자기가 66년 역사의 장수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시작이었다.
○무차입 무해고로 장수경영 틀을 만들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들은 회사가 창업 60여 년 만에 세계 4위의 도자기 기업으로 떠오른 비결로 하나같이 ‘무차입’과 ‘무해고’ 경영방침을 꼽았다. 김무성 한국도자기 상무는 “무차입과 무해고라는 한국도자기의 경영 이념은 김동수 회장의 지론”이라며 “영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무리한 확장경영을 자제하고 임직원의 신뢰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경영방침으로 ‘무해고’를 정한 사연도 흥미롭다. 1969년 초 회사 청주공장 도자기 가마에서는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폭발 위험이 있어 경영진이 만류했지만 현장 공장 직원들이 가마 위에 올라갔다. 도자기 원료인 백토를 뿌려 급한 불길은 잡았지만 직원들은 오히려 “값비싼 백토를 썼다”며 안타까워했다. 회사 경영진은 그때부터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직원들을 위해 무해고 방침을 결정했다.
이후 한국도자기에서 인위적인 감원이 사라졌다. 이때 세운 무해고 원칙은 극심한 마이너스 성장기이던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유지됐다. 한국도자기에는 지금도 30년 넘게 근무한 숙련공들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영진이 ‘무감원’을 회사 방침으로 내세우자 직원들도 화답했다. 이후 단 한 번의 노사 쟁의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2004년 김 회장이 장남인 김영신 사장에게 경영을 맡길 때도 가장 강조한 것이 직원 사랑이었다”며 “한국도자기 청주공장은 부부(夫婦)와 부자(父子), 형제가 함께 다니는 회사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로 세계 1위 노릴 것
올해는 한국도자기에 무척 중요한 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업계 상위권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세계 도자기시장 1, 2위를 다투던 미국 레녹스와 영국 웨지우드는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파산했다. 세계 4위 업체인 한국도자기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김무성 상무는 “업계 선두권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열렸다”며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고급 도자기 생산을 올해 목표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한국도자기가 한국 산업계의 대표적인 장수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도 바로 기술력이다. 60년대까지 가내수공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내 도자기 업계는 한국도자기의 기술 성장과 함께 ‘산업화’할 수 있었다.
한국도자기는 제2의 창업을 선언했던 1973년 국내 최초로 ‘본차이나 도자기’를 만들어 보급했다. 본차이나란 도자기에 30∼50% 정도의 소뼈를 넣은 제품으로 일반적인 제품보다 가볍고 강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한국도자기가 만든 제품은 청와대에서 국빈 접대용 식기로 쓰였다. 국내에 도자기 자동화 설비를 들여오는 부분에서도 다른 회사보다 앞장섰다. 한국도자기 측은 “2003년에는 세계 최초로 항균 기능이 있는 은나노 도자기를 개발하는 등 꾸준히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며 “앞으로 안정적인 경영과 고급 명품 개발로 100년 후에도 지속하는 도자기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한국도자기 약사(略史)
―1943년 김종호 창업주가 청주서 설립
―1976년 청주 제1공장 준공
―1982년 본차이나 제1공장 준공
―1986년 한국도자기 종합디자인센터 준공
―1991년 인도네시아 합작투자회사 설립
―1995년 디자인 스쿨 프로아트 설립
―2000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사옥 준공
―2003년 명품브랜드 프라우나 개발 및 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