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용 만으론 한계” 캐주얼 접목
45일주기 신상품… 유행 이끌어
산악인 박영석 스타마케팅도 한몫
요즘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노스페이스 검은색 바람막이 재킷은 ‘교복 위의 교복’이다. 특별한 장식 하나 없는 밋밋한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란 마크만 선명할 뿐이지만 10대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드레스 코드’로 통한다.
노스페이스 신드롬이 일고 있다. 산뿐만 아니라 도심 거리에도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걸친 사람들이 넘쳐난다. 10대 청소년부터 60대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등산복으로 알려진 브랜드지만 나이, 장소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즐겨 입는다.
○‘아웃도어=등산복’ 공식은 NO!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전국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노스페이스는 최근 수년간 매년 30% 이상 판매를 늘리며 아웃도어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3900억 원. 2위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2100억 원)와는 두 배 가까이 격차를 벌렸다. 국내 의류업계에서 단일 브랜드로 연간 3000억 원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중저가 의류는 제외)는 닥스(LG패션), 빈폴(제일모직) 정도다. 의류업계에서는 한 브랜드에서 매출이 3000억 원을 넘었다는 것은 일부러 마케팅을 안 해도 소비자들이 알아서 사가는 브랜드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스페이스가 론칭될 당시만 해도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 코오롱스포츠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대형 브랜드가 없었다. 전체 아웃도어 시장 규모도 5000억 원을 밑돌아 라이선스를 들여와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길지 의문시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노스페이스는 ‘아웃도어=등산복’이란 고정관념을 깨며 시장 규모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10여 년 만에 노스페이스는 ‘등산복 같지 않은 등산복’을 유행시켰다. 노스페이스가 불을 붙인 열풍 덕에 현재 아웃도어 시장은 1조8000억 원 규모로 커졌다. 김철주 골드윈코리아 전무는 “실용적인 아웃도어 의류에 캐주얼한 디자인이 접목되면서 고객들도 이제는 아웃도어 의류를 언제 어느 때나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여기게 됐다”며 시장 성장의 이유를 분석했다.
○산사람들도 인정한 품질
노스페이스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산악인들의 평가다. 전문가인 산악인들 사이에서 ‘노스페이스 제품 좋더라’는 입소문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큰 힘이 됐다. 노스페이스는 1997년 브랜드 론칭 때부터 등산복 브랜드는 산악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제품을 개발했다. 이때부터 산악인 모임을 후원하면서 북극 탐험, 히말라야 원정 등 10여 년간 100회가 넘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단순한 물품 지원에 그치지 않고 극한 상황에서 노스페이스 제품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개발해 제품에 반영했다. 김철주 전무는 “아웃도어는 산악인들의 생명이 달린 기능성 의류이기 때문에 유행이나 패션보다는 활동성, 기능성,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청소년 겨냥 마케팅 주효… 홈페이지 고객 59%가 10, 20대
지금은 새로울 것 없는 산악인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을 처음 선보인 브랜드도 노스페이스였다. 아웃도어 동호인들 사이에서 ‘야구의 박찬호’라 불리던 산악인 박영석 대장을 이용한 스타 마케팅이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라는 신뢰도를 줬다. 허영만 화백이 그린 박영석 대장 얼굴을 프린트한 옷은 전문 산악인은 물론이고 10, 20대 젊은 소비자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브랜드 론칭 때부터 종합일간지를 중심으로 인쇄광고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일부 등산 인구만 겨냥해서는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 ‘미래의 VIP’ 10, 20대를 모셔라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가운데 노스페이스만큼 10, 20대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도 드물다. 노스페이스 온라인 쇼핑몰에서 10대 고객의 비중은 전체 고객의 30%를 차지한다. 20, 30대 고객은 45%, 10∼30대 고객 비중이 75%에 이를 정도로 젊은 브랜드다. 국내 패션 1번지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 노스페이스 매장 ‘하트오브서울’은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최초의 ‘콘셉트 스토어(브랜드 정신을 홍보하는 매장)’다. 2007년 매장을 열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10, 20대 위주인 명동에 등산복 매장을 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노스페이스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공간을 벗어나 미래의 고객인 10대들에게 브랜드 정신을 홍보할 콘셉트 스토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노스페이스는 고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서울 명동점 외에 대전과 광주에도 추가로 콘셉트 스토어를 열었고 다른 후발 브랜드들도 잇달아 명동에 콘셉트 스토어를 선보였다.
노스페이스는 10, 20대 고객을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마케팅)뿐 아니라 제품에도 10, 20대 고객의 취향을 반영했다.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신상품을 1년에 2번 내놓는 것과 달리 노스페이스는 40∼45일 단위로 신상품을 내놔 유행에 민감한 10, 20대 고객의 구미를 맞췄다. 자녀 옷을 사주기 위해 매장을 찾은 부모들이 덩달아 제품을 구입하는 ‘덤 효과’도 나타났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관계자는 “기능성 의류일수록 브랜드 충성도가 높다”며 “지금의 노스페이스 10대 고객은 10, 20년 후 큰 고객 자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