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아메리칸 드림’의 종언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6월 2일 02시 59분



한때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군림해 왔던 101년 역사의 제너럴 모터스(GM)가 결국 파산보호의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의 인터넷매체인 스포크스먼리뷰(spokesman.com)는 “GM의 몰락은 한 시대의 종언”이라고 1일 보도했다.
GM이 미국 블루칼라 근로자에게 안정된 직장과 중산층으로의 신분 상승 기회를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GM의 몰락은 미 블루칼라 근로자들에게는 꿈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높은 수준의 임금을 이끌어내면서 GM 근로자들은 자택과 별장, 보트를 소유할 수 있었으며 건강보험료를 부담할 필요도 없었고 충분한 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받았다.
GM의 파산은 일반 미국인들에게도 충격이다. 뉴욕타임스 자동차 칼럼니스트 제임스 콥 씨는 “우리 집 ‘크리스틴’은 GM 셰비(GM 대표 모델 시보레의 애칭) 모델이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대다수 1950년대 부부들에게 가장 큰 꿈은 GM 차를 사는 것이었고, 우리 부모님도 어렵게 한 대를 장만했다”며 “GM의 몰락에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GM을 사는 것이 미국인들의 꿈이었던 것처럼 GM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자동차 업체였다. 1950년대 GM은 미국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고 1960, 70년대 전성기에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30%대에 이르기도 했다. 1979년 미국 내 근로자가 61만8000여명에 이르러 미국에서 가장 많은 근로자를 고용했고 전 세계 고용 근로자 수도 85만3000명에 달했다.
1950년대 GM의 최고경영자였던 찰스 어윈은 1952년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뒤 의회 인준청문회에서 “국가(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은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GM의 신화는 1980년대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석유위기를 계기로 소비자들은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 자동차보다는 작고 효율적인 일본차를 선호했다.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질주하는 동안 GM 등 ‘빅3’는 대형차에 집착하는 등 안이한 대응으로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0년대 들어 추락 속도가 더 빨라져 GM은 지난해 77년간 지켜온 세계 자동차 업계 정상의 자리를 일본 도요타에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GM은 작년에만 310억 달러의 손실을 보는 등 지난 4년간 820억 달러의 누적 손실을 내면서 보유 현금이 바닥났고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GM은 파산보호를 통해 우량자산은 새로 태어날 ‘굿 GM’에 넘기고, 부실자산은 ‘배드 GM’에 남겨 청산,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생을 도모하게 된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새 GM은 미국과 캐나다 정부가 72.5%, 노조가 17.5%, 채권단이 10%의 지분을 나눠 갖는 ‘국유기업’으로 운영된다. GM은 작년 말 현재 6만2000명이던 공장 근로자 수를 내년 말까지 4만 명으로 줄이고 6246개인 딜러 망 중 2600개를 내년까지 줄일 예정이다. 8개 보유 브랜드를 시보레 캐딜락 GMC 뷰익 등 4개로 줄이고 미국 내 47개 공장을 내년 말까지 34개로, 2012년까지 31개로 줄이는 등 지금보다 ‘작은 덩치’로 살아남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GM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간 1700만 대에서 현재 1000만 대 수준으로 떨어진 자동차 판매를 늘리고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세계 자동차 시장의 회복과 경쟁력 있는 모델 개발이 GM의 회생을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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