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구 동구 방촌동에 문을 연 한 미용실. 이날 이곳에선 미용실을 찾은 모든 손님들에게 특별 할인된 3000원에 이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금은 모두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착한’ 개업식이 열렸다. 이날의 주인공인 김미영(가명) 씨가 이 같은 이벤트를 준비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야심 차게 시작한 식당 사업이 ‘빚 폭탄’만 안긴 채 망한 후 그는 이혼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밖에선 외로운 가장이자 집에선 세 자녀의 엄마였던 그가 살기 위해 찾은 것은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 재단에서 운영하는 ‘희망가게’. 저소득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돕는 소액 대출 및 지원 사업이다.
“지난 8년간 얼라들은 크는데 빚은 계속 늘고 혼자 감당하기가 억수로 어려웠어예. 미용 기술을 살려 희망가게를 통해 이제 저도 남한테 도움 주는 희망의 가위손이 되고 싶습니더.”
○불황일수록 힘이 되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아모레퍼시픽은 2003년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유산과 주식 일부를 유가족들이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한 것을 계기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저소득층 대상 소액 창업 대출) 사업인 희망가게를 시작했다. 초창기 50억 원이던 기금은 최근 서경배 사장이 부친의 뜻을 이어 개인 출연금 및 회사 기금 5억 원을 추가로 기부한 데다 기업 주식 가치가 뛴 덕에 현재 80억 원으로 늘어난 상태. 이를 운영하는 아름다운 재단은 창업을 꿈꾸는 ‘엄마 가장’들에게 무담보로 최대 4000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창업 후 5년 내 분할 상환한다는 원칙 아래 이자는 나눔을 실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만 살려 2% 이내로 받는다. 이자로 들어오는 돈은 또 다른 여성 가장 창업 지원에 사용되는 선순환 구조로 운영된다.
희망가게는 2004년 문을 연 1호점 서울 종로구 가회동 ‘미재연’(현 정든찌개)을 비롯해 이날 문을 연 미용실까지 총 41개 지점이 있다. 아름다운 재단 측은 올해부터는 예산을 늘리고 수도권 중심으로 운영해 온 사업 지역도 대구와 대전, 광주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점포 수도 지난해보다 7개 늘려 20여 개를 오픈한다는 목표다.
○꼼꼼한 창업 컨설팅과 사후 관리
산업폐기물 재활용 사업, 자동차 외형복원 전문점, 개인택시 사업까지…. 41개 희망가게 중엔 음식점이나 미용실 외에 주부 혼자 시작하기 쉽지 않은 업종도 많다. 업종을 불문하고 희망가게 대부분이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업지원 자금과 함께 제공된 전문 컨설팅과 교육, 그리고 사후관리가 있었다.
희망가게 창업주는 누구나 사업에 필요한 회계, 세무 수업 및 업종별 전문 교육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이에 따라 김 씨 역시 앞으로 1년간 전문 미용사들과 함께 최신 유행 머리 스타일에 대해 공부할 예정이다. 또 지역 내 연계된 전문 창업컨설팅 자문단이 창업주들에게 업종별 상권 분석과 사업 계획안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이들은 창업 후에도 1년간 꾸준한 모니터링과 함께 사후 관리를 하는 ‘해결사’ 역할을 담당한다. 창업주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사업 노하우나 운영 비법을 공유하는 자리도 종종 마련된다.
정온주 아름다운 재단 희망가게 담당 팀장은 “여성 가장들의 진정한 자립을 돕기 위해 사업뿐 아니라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가족 문제 등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