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포장(패키지)’ 경쟁력 강화에 발 벗고 나섰다. 최지성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최근 회의를 열고 패키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품질 평가 전시회’를 갖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매년 7월 소니, 노키아 등 경쟁업체 전자 제품들의 품질 평가 전시회를 벌여왔지만, 제품 패키지만을 따로 모아 전시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위해 패키지 태스크포스도 구성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패키지에 신경 쓰는 것은 후발 업체의 몫”이라며 상대적으로 수수한 패키지를 제작해 왔다.
전자업계에서 패키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의 변화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 ‘알맹이’만큼 중요해진 ‘감성 껍데기’의 시대
삼성전자 패키지 디자인팀은 요즘 바쁘다.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인쇄 기자재전에 참가하고 뉴욕, 파리로 건너가 패션쇼를 관람하는가 하면,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들러 화장품 진열 방식과 패키지 디자인 시장 조사도 하고 있다. 무조건 ‘원가 절감’을 외치던 과거 모습은 사라졌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패키지 전략은 ‘패키지 에디션’. 하나의 제품에 여러 가지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품 전략팀 패키지 디자인 파트 신현호 책임디자이너는 “패키지가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는 하나의 매체로 떠올랐다”고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메워서 집어넣는 행위(패킹)’란 뜻에서 출발한 패키지는 이제 제품 보호를 넘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도구로 발전했다. 제품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만큼 전자업체들은 강렬한 패키지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7명의 패키지 전담 디자이너를 둔 LG전자는 2005년 ‘초콜릿폰’ 이후 ‘감성 패키지’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고화소 카메라 기능을 앞세운 휴대전화 ‘뷰티폰’ 상자에는 빛 감지 센서를 넣어서 열 때마다 ‘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를 내게 했다. 또 다이어리 기능이 부각된 휴대전화 ‘프랭클린 플래너폰’ 상자는 실제 프랭클린 다이어리처럼 만들었다. 기존 육면체 상자 제작 때보다 30% 정도 비용이 더 들어가지만 이를 통해 잠재적으로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디자인경영센터 오병진 책임연구원은 “장점, 차별점 등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상자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패키지의 마술
감성 패키지 마케팅은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등 휴대용 디지털 기기를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본격적인 시작은 애플 ‘아이팟’부터. 2006년 애플은 ‘아이팟 나노’ 2세대를 공개하면서 제품을 아크릴 케이스로 씌워 투명하게 보이도록 해 ‘육면체’ 상자의 개념을 깼다. ‘아이폰’과 ‘아이팟터치’ 상자는 위에서 밑으로 씌우며 닫을 때 바로 닫히지 않고 3∼4초간 시간을 두게 했다. 푹신한 느낌을 주려고 윗상자에 스펀지를 덧씌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비용 절감과 판매 확대라는 효과도 숨어 있다. 과거처럼 매장 진열용으로 제품 하나를 푸는 낭비마저 줄이기 위해 업체들은 투명 케이스에 예쁘게 담아 박스째 진열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형 유통 매장이나 박스째 놓고 파는 할인매장 등이 늘면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미키마우스 MP3’로 알려진 아이리버의 ‘엠플레이어’는 종이 상자에 담던 것을 아크릴 패키지로 바꿔 담은 후 판매량이 40% 가까이 증가했다.
:감성 패키지 마케팅:
개성 없는 획일화된 골판지 패키지가 아닌, 감성적인 부분을 극대화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패키지 마케팅. 주로 휴대전화와 MP3플레이어 등 휴대용 디지털기기의 패키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아이리버의 경우 우수 패키지만을 모아 패션처럼 ‘패키지 컬렉션’ 식의 전시회를 펼칠 계획도 갖고 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