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섹션 피플]美테이블스타일링 달인 영송 마틴 씨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오프라 파티 테이블도 제가 꾸며요

한국계 미국인 영송 마틴 씨(송영숙·51)는 1999년 어느 날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집 소파에서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봤다. 자신의 한국이름 ‘영숙’을 딴 ‘YS’란 패션 브랜드, 유명 음식 평론가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남편과 소중한 아들….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1970년대 미국으로 간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었다. 하지만 호황기의 ‘샴페인 거품’은 꺼졌고, 1990년대 패션계는 비즈니스 전투장이 됐다. 송 씨는 소파에 몸을 파묻었던 1999년 바로 그날, ‘이젠 패션 일을 정리해야겠어’라며 곁에 있던 옐로 페이지(업종별 전화번호부)를 무심코 펴 들었다. 여기서 송 씨 인생의 꿈이 완성될 줄이야….

그는 패션 디자이너 시절 화사한 색상의 천으로 의자 커버를 만들어 그 위에 옷을 진열했다. 그가 만든 의자 커버는 윗부분은 레이스, 중간은 리본, 아랫부분은 풍성하게 퍼지는 실크라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 같았다. 이를 찍은 사진들이 각종 잡지에 실리면서 미국 전역에 의자 커버 열풍이 불었다. 송 씨는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 옐로 페이지에서 ‘웨딩 비즈니스’ 업종을 찾아봤다. 뜻밖에도 전화번호가 반 페이지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 이거다. 틈새시장이다!”

갖고 있던 천들로 냅킨과 테이블보 등을 만들었다. 상류층 결혼식과 파티를 겨냥해 분홍 작약과 아이보리 색 장미꽃 중간에 커다란 진주를 끼우고, 초를 담은 유리컵엔 크리스털을 붙였다. 테이블은 흰색 깃털로 뒤덮었다.

그가 2001년 ‘와일드 플라워 린넨’이란 이름으로 세운 테이블스타일링 회사는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스타들의 각종 파티와 아카데미 시상식 장식 등을 도맡아 이제 연간 매출이 1000만 달러(약 124억 원)에 이른다. 어느 유명 스포츠맨은 아내와 단 둘이 하는 결혼기념일 디너 스타일링을 그에게 맡기며 200만 달러(약 24억8000만 원)를 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달부터 롯데호텔 서울의 웨딩 및 연회 스타일링 컨설턴트가 됐다. 분홍색 테이블보 천으로 민소매 원피스를 만들어 입고 있던 그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한국의 차가운 웨딩문화를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 단아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이 한국의 야생 작약 같았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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