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에코 보보스’ 잡아라

  • 입력 2009년 6월 5일 02시 59분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친환경 제품에 아낌없는 소비

‘돈이 되는 고객’으로 급부상
백화점界 마케팅 표적으로

요즘 유통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은품은 소위 ‘에코 백’이라 불리는 누런 면 가방이다. 밋밋한 디자인에 특별한 장식 하나 없는 가방이지만 20, 30대 젊은 여성 사이에서는 패션아이템으로 인기다. 롯데백화점은 환경의 날(6월 5일)을 맞아 본점과 잠실점, 노원점에서 일주일간 진행될 ‘친환경 먹을거리 상품전’ 구매 고객에게 나눠줄 에코 백 1250개를 준비했다. 김상권 롯데백화점 식품담당 상품기획자(MD)는 “친환경이 패션 트렌드가 되면서 에코 백만큼 유용한 사은품도 없다”고 말했다.

환경이라는 도덕적 가치에 돈을 아끼지 않는 ‘에코 보보스(Eco-BOBOS)’가 새로운 소비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에코 보보스는 환경을 자신의 지위를 상징하는 소비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은 자신과 주변인의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꼽으며 ‘잘먹고 잘살자’ 수준이던 참살이족(族)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큰손’으로 떠오른 에코 보보스

4일 갤러리아백화점에 따르면 이 백화점 압구정점에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식품과 화장품군에서 친환경 제품을 구입한 고객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이 일반 고객의 3배 정도(일반 고객보다 191% 높음)였다. 일반 고객 가운데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는 비중은 10%였지만 연간 800만 원 이상 구입하는 VIP 고객 가운데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는 비중은 27%로 나타났다. 이 기간 친환경 제품 소비자가 백화점을 찾는 횟수는 평균 12회인 반면 일반 고객은 5회에 그쳤다.

롯데백화점에서도 비슷한 구매 경향이 나타났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친환경 식품매장인 ‘올가’를 이용한 고객은 1만6204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8% 늘었다. 구매금액도 18.4% 증가했다.

친환경 식품을 구입한 고객이 가장 돈을 많이 쓴 매장은 다름 아닌 명품매장이었다. 최원일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은 “소득 상위계층이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기보다는 친환경이 하나의 패션 트렌드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친환경 마케팅은 유통업체들에도 기업이미지 향상이나 사회 공헌 활동을 넘어 ‘돈이 되는 고객’을 잡기 위한 적극적인 구애로 발전하고 있다.

○친환경이 촌스럽다고? NO!

전업주부 송모 씨(32·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14개월 된 딸을 위해 프랑스에서 수입된 유기농 면내의만 사서 입힌다. 송 씨는 “염색을 하지 않아 누리끼리한 면내의 색이 오히려 고급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친환경을 드러내는 명품 브랜드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라져 가는 자연을 누리는 것이 ‘최고의 사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데다 ‘나는 환경주의자’라는 자격증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

시장조사전문기관인 트렌드워칭닷컴은 “친환경은 제품 자체나 브랜드를 넘어 원재료 선택부터 생산, 유통과정에서 환경을 중시하는 스토리를 담을 수 있어 차별화를 원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에 매력적인 콘셉트”라고 분석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에코 보보스(Eco-BOBOS):

환경을 뜻하는 ‘에코’와 부르주아(Bourgeois)의 물질적 부(富), 보헤미안(Bohemian·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예술가)의 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새로운 엘리트 계급을 지칭하는 ‘보보스’의 합성어. 에코 보보스는 환경을 자신의 지위를 상징하는 소비 대상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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