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왔을 때 어떤 사람은 담을 쌓고, 어떤 사람은 풍차를 세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위기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것인가. 이것은 한국 기업에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마케팅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사진)가 5일 방한해 서울 광진구 능동 돔아트홀에서 강연을 했다. 백발이 성성한 78세의 노(老) 교수는 이날 ‘격동의 시대에서 기업의 경영과 마케팅 전략’을 주제로 3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연과 대담을 이어갔다.
코틀러 교수는 최근 파산사태를 맞은 GM의 사례를 예로 들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GM은 세계적인 기업이었지만 (더는 통하지 않는) 기존의 전략을 고집하다 전략적 변곡점을 놓쳐 망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략적 변곡점을 놓치는 기업의 특성을 5단계로 요약했다. △‘잘나가는’ 기업이라는 생각에 자존심과 자만심이 높아지기 시작해 △‘우린 못할 게 없다’며 무절제한 성장을 추구하고 △이로 인해 회사 내에 문제가 생기지만 이를 부정하며 △결국 GM처럼 회사 밖까지 기업의 문제가 노출되고 △급박한 구제작업으로 결국 부도나 파산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코틀러 교수는 “삼성 LG 현대 같은 한국 기업은 결코 이러한 병폐에 빠져선 안 될 것”이라며 세 가지 전략을 갖추라고 주문했다.
△경영환경 변화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다각적 경보체제 △각각의 변수에 따른 다양한 경영 시나리오 수립 △이에 따라 유연한 예산 활용이 그것이다. 특히 그는 “불황기엔 많은 기업들이 무턱대고 모든 비용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한 부문에서 줄인 예산을 중요한 부분에 유연하게 활용해 위기 속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틀러 교수는 “환율 같은 경영환경이 매일 무섭게 바뀌는 요즘 같은 땐 최고경영자(CEO)들은 밤에도 깨 있어야 한다.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를 놓치면 엄청난 사건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틀러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차를 구입한 고객이 실직하면 차를 반납받고 구입비를 되돌려 주는 마케팅을 펼쳐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현대차의 사례를 예로 들며 “불황에 대처하는 한국 기업들의 전략이 매우 창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