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달러 넘으면 수지악화 - 증시에 악재
최근 급등하는 국제유가가 회복 기미를 보이는 한국 경제와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기의 유가 상승은 수요 증가, 즉 경기 회복을 뜻하기 때문에 일단은 좋은 신호로 볼 수 있다. 또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자원이 많은 신흥시장의 경기회복이 빨라지기 때문에 한국의 수출 증가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유가 상승은 수요 증가보다는 원유결제 통화인 달러의 약세와 금융자본의 원유에 대한 투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유가만 크게 오를 경우 인플레이션, 무역수지 악화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게 된다.
○ 대내외 여건 2007년보다 안 좋아
한국 경제가 국제유가에 바짝 긴장했던 가장 최근 사례는 2007년 하반기부터 약 1년 동안이었다. 2007년 6월 말 배럴당 60달러대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이듬해 7월 140달러 선까지 수직상승했다. ‘3차 오일쇼크’가 닥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감돌았고, 수입물가가 치솟으면서 무역수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지금은 그때보다 절대적인 유가 수준은 낮은 편이지만 주변 여건은 더 안 좋다. 당시엔 비록 호황의 끝물이긴 했지만 글로벌 수요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기가 침체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금융시스템도 불안한 상태다. 유가급등으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경우 증시나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타격을 받게 된다. 또 택시요금과 식료품값 등이 줄줄이 인상되는 가운데 유가까지 오르면 조금씩 소생 기미를 보이고 있는 소비심리가 다시 위축될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실제 경제가 살아나서가 아니라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유가가 오른다는 점을 특히 걱정하고 있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유가가 올라도 그만큼 글로벌 경제가 원유를 이용해 산업생산을 많이 했고 중국이 값싸게 물건을 공급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효과가 적었다”며 “지금처럼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유가가 급등하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 80달러 넘으면 한국 경제에 비상등
정부 당국과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유가의 ‘임계점’으로 배럴당 70∼80달러 선을 제시하고 있다. 2007년 말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대에 진입한 뒤 월간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한 사실을 감안한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하반기 평균 배럴당 70달러를 넘지 않는 선이라면 무역수지에 큰 악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원유 수입을 100으로 잡을 때 이 가운데 50가량을 석유제품으로 수출하는 구조라 유가가 크게 급등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수출과 수입이 모두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제유가가 79달러 선 이하로 유지되면 한국 경제가 이를 견딜 수 있겠지만 이 수준을 넘으면 무역수지 악화, 물가불안 등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증권가에서도 유가 상승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가 급등이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증시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뿐더러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종목의 주가상승에도 걸림돌이 된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수세가 잠시 주춤했던 것도 이들이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피해 자원이 많은 다른 신흥시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KTB투자증권 정용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 유가상승은 경기반등 신호로 받아들여졌지만 현재 경제 펀더멘털이 2007년보다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가상승의 부정적 측면에 더 주목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