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퍼주기식 대출 확대 일변도에서 벗어나 옥석(玉石)을 가려 선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바꾸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와 관련해 은행 대출을 받은 뒤 1개월 안에 폐업하는 등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뚜렷한 중소기업을 찾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7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만기를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 연장해 주도록 한 기존 지침을 손질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만기연장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은행 대출이 적격 기업에 집행되는지 정밀 점검해 정상적인 조건이라면 생존이 불가능한 ‘좀비(Zombie) 기업’으로 돈이 흐르는 것을 막기로 했다.
우선 금감원은 은행과 체결하는 양해각서(MOU)에서 중소기업 대출 만기연장비율을 과거 3년 평균치 이상이 되도록 한 조항을 삭제해 은행이 자체 심사 결과를 토대로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만기연장을 판단토록 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무조건 중기대출 만기가 연장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미 심사를 전보다 까다롭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중소기업 지원자금을 노리고 은행 대출을 받은 뒤 1개월 내 폐업하는 업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조기 폐업한 업체의 수, 업종, 대출 유형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 자료를 분석해 중소기업의 모럴 해저드 유형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은행의 대출심사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는 ‘일부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실물경제를 살리고 기업 연쇄 도산을 막으려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당국의 기존 방침에서 크게 변화한 것이다.
이 같은 정책 선회는 금융시스템이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 정상상태로 복원되고 있는 데다 일부 중소기업의 모럴 해저드 현상이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올 1월부터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금리가 대기업보다 낮아지는 이상현상이 나타났고 보증회사 직원들은 정부가 요구한 보증실적을 채우기 위해 보증심사 기준을 크게 낮추고 보증대상 기업을 찾아다녀야 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