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2년 가격정찰제 허울만
“원래 65만 원짜리인데 세일 기간 전에 미리 30% 세일한 가격에 에누리 더 해드려서 39만 원에 해 드릴게요.”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C 남성 정장 브랜드 매장을 찾은 기자에게 판촉 사원이 건넨 말입니다. 가격표에는 전혀 다른 가격이 붙어 있었지만 판촉 사원은 “세일 기간 전에 특별히 에누리해 주는 것”이라며 구입을 재촉하더군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국내 주요 백화점들이 남성 정장의 비정상적인 할인판매를 없애겠다며 정가를 평균 30% 내리는 가격정찰제를 시행한 지 2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가격정찰제가 자리를 잡았다는 백화점들의 자화자찬과 달리 기자가 이날 매장에서 체험해 본 현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기자가 다른 남성 정장 브랜드 매장을 찾아 제품 가격을 묻자 “어유, 가격표에 붙은 가격은 50% 할인을 이미 적용한 거예요”라고 말하더군요. ‘원래 제품이 출고될 때 붙은 가격인데 왜 소비자에게 할인을 해주는 것처럼 말하느냐’고 되묻자 그 직원은 “이 가격에서 5만, 6만 원은 더 깎아줄 수 있다”고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이날 기자가 지켜본 10여 명의 소비자는 제품에 붙은 가격표는 무시하고 실제 판매가격이 얼마인지를 판촉 사원에게 다시 확인하더군요.
사실 백화점에서 가격표에 붙어 있는 대로 주고 사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소비자들이 백화점에 대해 갖는 불신의 골은 깊습니다. 이런 불신의 불씨를 지핀 것은 바로 남성 정장입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남성 정장 협력업체들이 정상가격을 높게 책정한 뒤 세일기간에 상관없이 깎아주는 정책을 쓰면서부터죠. 소비자들은 당연히 의류에 표시된 정상가격에 의구심을 가지게 됐고, 남성 정장은 항상 정상가보다 할인된 가격에 구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정효진 산업부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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