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에 빗장 푼 자본시장 개방
한국 고금리 현혹된 외국자금 밀물
당국 단기부채 실태도 모르고 방치
1990년대 초부터 상품시장 개방과 함께 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외국의 압력이 점점 더해져 갔다. 나는 1995년 2월 외교안보연구원에서 행한 ‘개방화 시대의 경제정책’이라는 연설에서 자본시장을 개방하자면 그에 앞서 국내 시장을 먼저 자유화하고 부실채권을 정리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내금리와 국제금리 사이의 격차를 좁혀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 단기 투기자본이 일시에 유입해 환율을 왜곡하고 통화 증발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다가 국내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일시에 외국으로 빠져나가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금융업체에 대한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다가 외압에 못 이겨 1990년대 초부터 외환거래를 단계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의 고금리에 현혹된 외국 투자가들은 해외에서 6∼7%의 저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한국에서 원화로 환전해 12∼13%의 고금리로 운용하면 환율이 안정되어 있는 한, 두 곱 장사가 된다는 묘미를 맛보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이 자본시장을 더욱 개방해야 한다고 본국 정부를 통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한편 외국 투자가들은 우리의 주가가 일반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해 주식시장에서 많은 주식을 매입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991년 이전에는 미미했던 외국인 주식투자가 1991∼1996년에 갑자기 61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뿐만 아니라 자율화, 개방화의 바람을 타고 은행, 종금사와 대기업들은 외국의 저리 단기자본을 차입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국내외 장기 투자에 투입하는가 하면 해외 투자에 경험이 없는 종금사들은 높은 기대 수익률에 현혹돼 인도네시아, 러시아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나 단기자본 유입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단기자본 유입을 반영해 환율은 안정적 추세를 보였는데 환율 결정은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시각 때문에 개입을 꺼렸다. 국제수지 적자에 대해서는 세계화 시대에는 국제수지의 국경적 의미가 달라진다고 하여 이를 걱정하는 필자를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웃는 당국자도 있었다.
해외자본 유입에 따른 통화 증발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쇄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은 불태화(不胎化) 정책, 즉 유입한 외화를 외국으로 다시 내보내는 정책을 시도하였다. 예컨대 해외여행자들의 환전 한도를 50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상향 조정하는가 하면 외환보유액 일부(40억 달러)를 은행을 통해 종금사에 예탁해 그들이 해외 증권에 투자하는 길을 텄다.
이같이 정부는 개방화, 자율화의 추세에 안주해 단기자본 도입과 그 용도를 방관해 오다가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에 비로소 금융기관 및 기업의 해외차입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단기부채가 무려 800억 달러에 달한 것을 모르고 지내 오던 당국자들은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개방화, 자율화는 외채 관리 및 금융감독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