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어느 날 오후 2시경. 제주 서귀포시에 사는 주부 A 씨는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집에 설치된 ‘지능형 전력 미터기(스마트 미터)’를 확인했다. 미터기에는 ‘kWh당 전기요금 320원’이라고 표시됐다. 5분마다 전력요금 수치가 달라지지만 전력사용량이 많은 낮이라서 그런지 큰 변화는 아니었다. 오후 10시경 미터기를 다시 확인하자 요금은 200원대로 떨어져 있었다. 그때서야 A 씨는 세탁기 전원을 켰다. A 씨는 살림도 알뜰하게 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도 일조했다.
똑똑한 전력소비를 돕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가 구축된 때를 가상으로 그린 모습이다. 지금의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 그리드는 각 가정의 소비자와 전력공급회사 간에 ‘정보 고속도로’를 뚫어준다.
○한국 2011년부터 제주에 시범 구축
전력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스마트 그리드에 세계 각국이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스마트 그리드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 정책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경기부양법안에서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45억 달러(약 5조6250억 원) 투자계획을 밝혔다. 전력업계와 IT업계의 손잡기도 활발해 토머스 에디슨의 지혜를 잇는 GE와 젊은 구글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미국 콜로라도 주 볼더 시에는 ‘스마트 시티’가 이미 조성됐다. 유럽연합(EU)은 2006년 스마트 그리드 비전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중국도 1조 위안 이상의 스마트 그리드 프로젝트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이달에는 처음으로 국제 스마트 그리드 콘퍼런스를 열었다. 정부는 2011년부터 시범도시인 제주도를 시작으로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나선다. 또 16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스마트 그리드 기술 협력을 늘려 전력수출 시대에 대비할 계획이다.
○에너지난 대비 위한 필수조건
전문가들은 스마트 그리드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에너지 위기에 대비한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자원을 언제까지고 퍼 나를 수는 없는 만큼 똑똑한 전력기술로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
스마트 그리드가 없으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의 전력망은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충분히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규동 전력IT사업단 사업지원팀장은 “신재생에너지는 전력 흐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수요 공급에 맞게 전력을 적절히 공급하는 스마트 그리드가 갖춰져야만 한다”고 했다.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앞으로는 스마트 그리드가 갖춰지지 않으면 새로운 산업시설을 지을 수도 없게 될 것”이라며 “단순한 전기절약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만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