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경기 하락세가 거의 끝났다’고 밝힘에 따라 국내 경기가 과연 바닥에 도달한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한은과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직 낙하하던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데 동의한다. 한국 경제가 이미 바닥을 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최근 경기동행지수 및 선행지수, 제조업 및 서비스업 생산, 소비재 판매지수 등 국내 경제지표가 일제히 호전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14일 내놓은 ‘현 경기 상황의 판단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경기는 통상 경기선행지수가 반등한 뒤 3∼7개월 후 저점에 도달했다”며 “올 1월부터 경기선행지수가 4개월 연속 상승한 것을 보면 현재 경기가 저점에 도달했거나 가까워졌다”고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도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2월에 바닥을 찍은 뒤 상승세로 돌아섰고, 재고율과 재고-출하 사이클 역시 국내 경기가 저점에 가까워졌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제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경기의 바닥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에 문제가 생겨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급등하고 있는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 역시 국내 경제에 다시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상황이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침체로 빠져드는 ‘더블딥’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11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더 이상 경기가 내려가지는 않는 것 같지만 바닥인지 여부는 말할 수 없다”는 애매한 표현을 쓴 것도 이런 불확실성 때문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경기 바닥’을 두고 거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진 8개국(G8) 재무장관들은 13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지난 9개월간 각국이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부양을 위한 조치를 과감하게 실행했으며 이에 따라 경제가 안정되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세계은행은 11일 “대부분의 개발도상국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월의 전망치인 ―1.75%보다 낮은 ―3.0%로 낮췄다.
장민 실장은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수요가 회복되고 수출이 늘기 전에는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어렵다”며 “당분간 경기가 부진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