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9년 12월 30일 서울대 정치학과, 외교학과 동창회 주최 조찬회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2년을 평가한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일이 있다.
먼저 1997년 말의 경제 상태와 1999년 말의 경제 상태를 비교했다. 금리는 30%에서 9∼10% 선으로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은 1700원대에서 1200원대로 안정됐다. 바닥이 났던 외환보유액은 700억 달러 수준을 돌파했다. 실업률은 7%까지 올랐다가 4%대로 떨어졌고 경제성장률도 1998년 ―5.8%에서 1999년에는 약 9%의 고성장이 예견된다고 했다.
이에 앞서 12월 3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의 경제위기와 구조개혁을 위한 국제포럼’에 참석한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그동안 IMF가 위기를 맞아 추진했던 정책이 옳았다는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금융, 노동, 공공, 기업 등 4대 부문의 개혁을 추진한 결과 1년 반 만에 외환위기에서 탈출했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동안 IMF와 정부가 시행한 거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노력과 성과를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캉드쉬 총재의 말과 김 대통령의 선언에 대해서는 약간의 토를 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책담당자에게는 사태의 객관적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IMF가 한국의 외환위기에 개입함으로써 580억 달러의 융자한도 설정과 단기 부채의 상환기간 조정 등으로 대외채무 이행에 차질이 없도록 도와준 것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IMF 헌장 제1조에 명기한 설립 목적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IMF 헌장 제1조에는 회원국이 국제수지 불균형에 봉착했을 때 ‘자국경제 및 국제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파괴적인 조치를 취함이 없이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하여’ 일정한 조건하에 일시적으로 자금을 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기돼 있다. IMF가 과연 정부가 ‘파괴적 조치’를 회피할 수 있도록 한국을 도와주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파괴적인 조치를 강요하여 일시적이나마 한국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지 않았는지 이 점은 앞으로 학계에서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먼저 금리와 환율이 내린 것은 비정상적 고금리와 고환율의 효과가 너무나 파괴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1998년 7월 IMF에 정책 수정을 통고하고 통화량을 늘리고 이자율을 내리는 경기 회복정책으로 전환한 결과로, 당초 IMF가 권고한 거시정책의 결과는 아니었다. 외환보유액이 증가한 것은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IMF가 주선해준 대외채무가 늘었기 때문이지 구조조정으로 국제수지가 개선된 결과는 아니었다. 1999년 경제성장률이 9%로 높아졌다고 하나 따지고 보면 전년에 5.8%나 감축된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 9%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1997∼99년의 GDP 평균성장률은 2.7%에 불과하다. 최근의 경기회복은 소비증가, 재고 조정, 일본의 엔고(高), 미국 경기의 지속적 호조 등에 기인한 경기 순환적 현상이지 구조조정의 기대 효과(효율화 및 경쟁력 강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경제회복의 원동력은 모진 시련에 굴하지 않고 경영상의 난관을 돌파하려는 우리 기업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있다고 봐야 한다. 본래 구조조정은 시행에 시간이 걸리고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더욱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구조조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끝나지도 않았는데 지금 어떤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성급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비판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