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솔린 비켜” 경주용車도 친환경 디젤 독무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6월 16일 02시 56분



■ 유럽인의 축제 佛 ‘르망 24시간 레이스’ 가보니
디젤차 1~3위 석권… 오염주범 누명 벗고 클린카로 자리 잡아


13일 오후 3시(현지 시간) 유럽의 시선은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200km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르망’으로 쏠렸다. 출발 신호와 함께 고성능 경주용차 55대가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을 내며 내달리자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 30여만 명은 열광했다. 이들은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며 내는 자동차 굉음을 듣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들었다.
텐트와 캠핑카로 가득 찬 경기장 주변 야영장에선 밤새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24시간 동안 5000km가 넘는 거리를 달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죽음의 레이스’라고도 불리지만 유럽인에겐 한바탕 축제였다.
○ “최신 디젤 기술의 경연장”
올해 대회에선 프랑스 푸조의 레이싱팀이 최고 클래스인 프로토타입1(LMP1·경주 전용)에서 1, 2위를 휩쓸며 독일 아우디의 6년 연속 우승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아우디는 2000∼2002년 3년 연속 우승에 이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내리 우승했다. 특히 2006년 이후에는 세계 최초의 디젤 레이싱카(R10)를 앞세워 3년 연속 우승하며 ‘디젤 레이싱카’ 시대를 열었다. 이번에 우승한 푸조 1, 2위 팀도 모두 디젤차였다. 이 대회가 시작된 뒤 80년 넘게 주도권을 잡던 가솔린 엔진 레이싱카는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진 듯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푸조 팀은 24시간 동안 13.65km의 서킷(경주용 도로)을 382바퀴나 돌았다. 무려 5200km가 넘는 거리를 쉬지 않고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린 셈이다. 포뮬러1(F1) 대회가 18개 국가를 돌며 한 시즌 내내 달리는 거리를 24시간 만에 주파해야 하는 만큼 어지간한 자동차로는 완주조차 쉽지 않다. 그만큼 르망 대회는 유럽의 자동차 기술 진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최근 유럽에서 디젤차가 친환경차로 자리 잡는 데는 효율이 뛰어난 고성능 디젤 차량 연구개발에 대한 아우디 등의 엄청난 투자가 큰 역할을 했다.
디젤차 3연승을 일궈낸 아우디 R10의 터보직접분사방식(TDI) 엔진은 환경오염 물질 배출량과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최근에는 최고급 세단에까지 장착되고 있다. 경기를 참관한 트레버 힐 아우디코리아 사장은 “디젤엔진은 기술의 발전으로 효율이 좋고 오염 물질 배출이 적은 친환경 엔진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며 “가격이 비싼 전기차, 하이브리드카 등이 자리 잡을 때까지 당분간 ‘클린 디젤’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스포츠를 넘어 축제의 장으로’
대회 전날인 12일 경기장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떨어진 르망 시내 중심. 모든 도로와 광장에는 대회에 참가하는 레이서들의 카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만 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럽 각국에서 달려온 관람객들의 손과 배낭에는 자국 국기가 꽂혀 있었다.
일부는 1주일 전부터 이곳에 와 야영을 하면서 예선전부터 지켜본 열광팬들이다. 메인 경기장 주변에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캠핑카나 텐트에서 잠을 잔다. 엄청난 규모의 야영장은 대회 시작 며칠 전부터 캠핑카와 텐트로 가득 찼다. 경기장 인근 평야에 마련된 비행장에는 유럽의 명사들을 실은 경비행기들이 쉼 없이 뜨고 내렸다. 영국에서 온 존 제밋 씨(45)는 “며칠 전에 와서 예선전부터 죽 지켜보고 있다”며 “르망은 유럽인이 1년 동안 손꼽아 기다리는 전설적인 축제 마당”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동차 관련 기업뿐 아니라 ‘에르메스’ ‘롤렉스’ 등 최고급 명품 브랜드들의 마케팅 전쟁도 치열하다. 대회 기간 이들 명품 브랜드는 경기 후원뿐 아니라 경기장 주변에 임시 매장을 열어 놓는다. 아우디가 경기장 주변에 임시 가건물 형태로 만든 비좁은 ‘아우디 레이싱 호텔’ 1박 2일 패키지 상품 가격은 500만 원이 넘지만 방을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해 이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르망을 찾은 세계 각국의 기자만 2200여 명이었고, TV로 경주를 본 사람은 세계 114개국 3억8600여만 명에 이른다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한국타이어가 후원하는 ‘한국 판바허 레이싱팀’은 LMGT2 클래스에 참가해 괜찮은 기록으로 달렸지만 충돌 사고로 아쉽게 완주에 실패했다.

::르망 24시간 레이스::
세계 3대 자동차경주 대회 중 하나로 프랑스 소도시 르망에서 매년 24번째 주말에 열린다. 1923년 처음 시작된 이 대회는 르망 주변 일반 도로에 만든 임시 서킷(13.629km)을 24시간 동안 누가 가장 많이 달리느냐에 따라 우승이 가려진다. 3명의 레이서가 한 팀을 이뤄 교대로 운전을 한다. 경주 전용차 부문인 LMP1(배기량 6L 이하·디젤차는 5L 이하), LMP2(배기량 3.4L 이하)와 양산차 부문인 LM GT1, GT2 등으로 나뉜다. 비교적 차량 개조에 제약이 없어 최첨단 기술 적용이 가능한 LMP1 부문에서 주로 전체 우승자가 나온다.

르망=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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