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이 다가오면 타이어 회사들은 저마다 오래된 타이어를 교체하라는 캠페인을 벌입니다. 타이어가 물에 뜨면서 미끄러지는 수막현상을 방지하려면 오래된 타이어를 교체해야 한다는 내용이죠. 타이어 판매를 늘리려는 마케팅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안전이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기자는 악천후에서 타이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레이싱에서 차이를 온몸으로 절실하게 체험했습니다.
14일 강원 태백시 태백레이싱파크에서 열린 ‘CJ 오 슈퍼레이스’ 2전. 기자는 이 대회 슈퍼2000 클래스에 출전했습니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이 매끈한 경기용 슬릭타이어만 준비했죠. 그런데 결승전이 열리는 오후 1시가 되자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경기시간이 몇 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 쓰는 경기용 레인타이어를 갑자기 준비해서 교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경기용 레인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처럼 타이어 바닥에 깊은 홈이 있습니다. 마른 노면에서는 슬릭타이어보다 접지력이 떨어지지만 파인 홈을 통해 빗물을 배수할 수 있기 때문에 제법 속도를 높일 수 있죠. 반면 슬릭타이어는 빗길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입니다. 바닥이 많이 닳은 일반 타이어도 슬릭타이어와 같은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슈퍼2000 클래스에서 1위를 차지한 인디고레이싱팀 조항우 선수는 비가 오지 않은 13일 예선 때는 슬릭타이어로 1랩에 1분4초대를 달렸지만, 비가 내린 결승에서는 레인타이어를 끼우고 1분8초가 나왔습니다. 1바퀴를 도는 데 4초 정도 늦어진 셈이죠. 그런데 슬릭타이어를 끼우고 결승에 나온 경기차는 어땠을까요. 출전한 9대 중 3대가 슬릭타이어를 장착했는데 모두 1분25초대를 기록했습니다. 예선기록보다 무려 20초가량 뒤진 결과입니다. 한마디로 빗길에서 슬릭타이어는 레인타이어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죠.
기자가 운전한 바보몰팀의 ‘i30’ 경주차는 직선주행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속도를 높이자 슬릭타이어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차가 똑바로 가지 못하고 옆으로 심하게 휘청대서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브레이크도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은 물론이죠. 슬릭타이어를 끼운 다른 경주차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이 고인 곳을 지나가면 차는 수상스키를 탄 것처럼 허무하게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기자가 고전분투하고 있는 사이 옆으로는 레인타이어를 끼운 차들이 쏜살처럼 추월해 지나갔습니다.
결과는 더욱 참담했습니다. 레인타이어를 넣은 6대가 1∼6위를 휩쓸었습니다. 슬릭타이어를 끼운 3대는 1위보다 무려 6, 7랩(전체 25랩)이나 뒤져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기자는 7위. 타이어가 자동차 경주에서는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생명에 영향을 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타이어를 한 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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