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국내에 새로운 인수합병(M&A) 모델로 ‘기업인수목적회사(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가 도입된다.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을 개정해 SPAC 설립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SPAC는 기업 M&A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로,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자금을 모은다. 증시에 상장된 이후 SPAC 설립인은 비상장 우량기업을 발굴해 인수하고, SPAC에 참여한 주주들은 나중에 회사 주가가 오르면 장내에서 주식을 팔아 차익을 얻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M&A 기법이지만 국내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국내 투자회사 가운데는 미국에 SPAC를 설립한 곳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SPAC 도입이 국내 M&A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물로 쏟아질 비상장 계열사를 인수하는 데 SPAC의 역할이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PAC와 사모펀드(PEF)는 M&A가 목적이라는 점은 같지만 진행 방식은 다르다. PEF는 ‘부실기업’을 사들여 구조조정을 한 뒤 장외에서 되팔아 수익을 낸다. 이때까지 몇 년간 투자자금이 묶인다. 반면 SPAC는 비상장 우량기업을 인수해 장내에서 주식을 팔기 때문에 투자자금 회수가 쉽다. PEF는 사모(私募)로 소수의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집하지만 SPAC는 공모(公募)로 자금을 모으고 인수하는 기업의 경영권도 보장한다.
SPAC 설립인은 대부분 금융회사와 같은 전문 기관투자가다. SPAC는 투자자 모집 단계에서는 투자할 산업분야만 밝힐 수 있으며 나중에 주주총회를 통해 투자 기업을 결정한다. 상장 이후 18개월∼2년 안에 M&A가 이뤄지지 않으면 SPAC는 자동 청산된다. M&A에 실패해도 공모 금액은 증권금융에 예치되기 때문에 투자자 손실이 적다. 다만 설립인은 초기 투자비용을 모두 잃게 된다.
SPAC가 도입되면 유망 벤처기업 M&A가 늘어 기존 벤처기업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의 자금 회수가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자력으로 증시에 상장하기 힘든 벤처기업을 SPAC가 인수하면 해당 벤처기업은 자금 조달과 상장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연구위원은 “국내 벤처캐피털은 투자자금을 IPO로 회수해 왔지만 지난해처럼 주가가 폭락하면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SPAC를 통해 벤처자금의 선순환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