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으로 세계경제가 이번에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은 모양이다. 일본의 사례와는 다르게 유동성 공급의 효과가 실물부문과 자산시장에 조금씩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호가 겨우 보일락 말락 하자 ‘인플레이션 망령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초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 우려가 있으니 서둘러 탈출전략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하면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던 바로 그자들이다. 그들은 유가가 최근 몇 개월 만에 바닥에서 두 배로 급등한 것,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것, 장기 국채금리가 상승한 것을 문제 삼는다. 물론 사상 유례없는 대량의 통화 공급을 과거에 수습한 경험, 즉 ‘훈련된 규범’이 없기 때문에 향후 통화 관리를 잘해나가지 못한다면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은 남아 있다. 그렇지만 과연 정책담당자들(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망령들’이 지적하는 내용을 모르고 있을까?
인플레이션이 빨리 고개를 쳐들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약한 수요 때문이다. 세계 소비의 주체인 미국 소비자들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저축을 늘리고 있다. 소비성향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자산가격(주식과 주택)의 폭락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베이비부머가 은퇴기에 들어섰다. 은퇴하면 소비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플레이션의 핵심 구성요소인 임금이 실업 증가 때문에 늘어나지 않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여전히 기업은 감원 속도만 줄였을 뿐 감원을 하고 있으며 임금을 깎고 있다. 임금이 생산원가의 70%다. 인건비가 줄어드는 것은 제품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이다. 즉,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전가하는 것을 막아주는 요인이 된다. 아직 재고 과잉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걱정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6월 이후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주식시장은 인플레이션 걱정 때문일까, 디플레이션 걱정 때문일까? 만약 주식시장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면 금 가격도 오를 것이고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도 오를 것이고 주가도 오를 것이다. 최근 며칠간의 시장 움직임은 반대다. 해답은 차트에 있다. 세계증시는 현재 차트상으로 기술적인 조정구간에 있다. 주가가 단기적으로 이동평균선으로부터 너무 멀리 이탈해 있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들은 이 경우 대부분 차익실현의 욕구를 느낀다. 이동평균선에서 멀어져 있는 주가가 이동평균선과의 간격(이격도)을 줄이고 나면 주식시장은 다시 본래 가던 길을 재촉할 것이다.
박춘호 주식투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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