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대 로렌스 피터 교수와 작가 레이먼드 헐 씨는 1969년 공저한 ‘피터의 원리’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지위까지 승진해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린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직장에서 우리는 종종 지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리더를 만난다. 꼼꼼하게 문서를 읽고 오자(誤字)를 잡아내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팀장, 사업부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전공 분야만 챙기는 임원 등이다.
마치 주파수 대역을 맞추지 못하는 라디오가 볼륨을 키울수록 소음이 커지는 것처럼 이런 리더는 열심히 일할수록 조직에 잡음을 일으킨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분히 소화해 내는 직원에게 승진의 기회를 주어야 옳지만 이 원칙을 지키는 조직은 흔치 않다. 한국 최고의 직장 연구조사에서 상위 10개 기업과 나머지 기업은 ‘우리 회사는 적절한 사람을 승진시키고 있다’는 질문에 각각 47%와 26%의 긍정 응답률을 보여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일부 선진기업은 한발 더 나아가 능력이 넘치는 사람에게만 승진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한 글로벌 소비재 기업에서는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승진시킨다’는 원칙을 적용한다. 팀장이 되었으니 교육도 받고 팀장처럼 행동하라고 하는 대신 팀 전체를 보고 고민하는 팀원만 팀장이 될 자격을 갖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전군의 간부화’라는 원칙을 군에 적용한다고 한다. 평시 자위대의 규모는 작지만 전시에는 모든 군인을 1계급 특진시키고 강제 징집해 단기간에 규모를 몇 배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능력과 인품이 모자란 상사를 모시는 것만큼 직장생활에서 곤혹스러운 일도 드물다. 이제 리더들은 자신이 기대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겠다. 조직 차원에서도 과연 관리자가 ‘리더십 성장로’에 갇혀 있지 않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리더로서 성장하는 길은 직선과 곡선이 함께 있어서, 팀원에서 팀장으로, 팀장에서 사업부장 또는 임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심한 곡선 주행로다. 적절하게 속도를 줄이고 새롭게 변화하지 않는 리더는 곡선 주로에서 이탈하고 만다. 일 잘하던 직원이 팀장이 되어서는 실적을 내지 못하고 직원들의 신망도 잃어버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상위의 역할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상사의 관점에서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조직은 풍성한 리더 후보군을 확보할 것이다. 물론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승진시킨다’는 원칙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도전해 볼 만한 목표다.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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