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금 12조 투입 우리銀 민영화 올스톱 위기

  • 입력 2009년 6월 18일 03시 00분


헐값 매각 논란… 反외국자본 정서 우려… 7년째 지분-경영권 매각 답보

《공적자금 12조 원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 주가가 2만 원대로 오른 2007년 6월.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인 A 씨는 “가격이 어느 정도 올랐으니 지분을 최대한 많이 팔고 싶지만 나중에 주가가 더 오르면 너무 싸게 팔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주가가 1만 원 선으로 빠진 요즘도 A 씨는 비슷한 걱정을 한다. “정부 안팎에서 더 떨어지기 전에 이제라도 처분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더군요. 하지만 지금 팔면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겁니다.” 정부가 우리금융을 2002년 6월 24일 증시에 상장한 이후 7년간 “반드시 해내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약속했던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중단될 위기에 빠졌다. 주가가 올랐을 때는 헐값 매각 논란을 우려해 번번이 매각 타이밍을 놓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떨어지자 ‘손해 보는 장사는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경영권 매각을 사실상 보류한 것이다.》

“주가 나중에 더 오르면…” 매각 시기 놓고 우왕좌왕
5조~6조원 경영권 인수할 국내 자본 찾기는 ‘별따기’
명문화된 민영화시한 없어 당분간 국유체제 유지할 듯

○지분 매각시기 놓치기 일쑤

2005년 2월 18일 50번째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열린 예금보험공사 15층 회의실. 문틈으로는 서류 넘기는 소리와 헛기침만 흘러나왔다. 참석자들은 류연수 예보 이사가 지분 매각 방안을 보고하기만 기다렸다. 쌀쌀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류 이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최근 주가 상승세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우리금융 지분을 가격과 수량을 정해 특정인에게 일괄 매각하는 2차 블록세일을 시행하려 합니다. 총발행주식의 5% 내외를 주당 9000원 이상에 파는 조건입니다.”

박영철 공자위 민간위원장, 박상용 위원, 김대환 위원 등 참석자들은 그전까지 열린 수십 차례의 회의에서 의식하지 못한 중압감을 느꼈다. ‘주가가 나중에 더 오르기라도 하면….’ 누구도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헐값에 팔았다는 비판을 염려하는 분위기였다.

2년이 넘는 준비작업 끝에 예보는 2007년 6월 지분 5%를 주당 2만2750원에 팔았다. 주당 매도가격이 당초 예상한 값의 2.5배나 되는 성공적인 거래. 하지만 일정을 조율했던 B 씨는 당시 “신도 모르는 게 주가라 나중에 실패한 거래라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 뒤로도 주식을 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하고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앞당길 기회가 많았지만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다.

민영화가 부진한 것은 이처럼 매각시점과 관련한 뚜렷한 판단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2004∼2007년 우리금융 임원을 지낸 C 씨는 “2차 블록세일이 진행될 당시 주가가 2만5000원 선을 훌쩍 넘기도 했다. 그때 지분을 대거 처분하지 못한 게 너무 아깝다”고 토로했다.

예보는 2007년 말 우리금융 지분 7%를 추가로 파는 3차 블록세일에 나서기로 하고 주간사회사까지 선정했지만 1년 반이 지나도록 매각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유은행 체제 유지하려는 듯”

현재 예보는 73% 지분 중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23%(소수 지분)를 먼저 팔고 경영권을 의미하는 50%+1주(지배 지분)를 나중에 판다는 계획이다. 원래 금융지주회사법에는 2005년 3월이 민영화 시한으로 명시돼 있었지만 지금은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시한이 없다. 정부가 시간에 쫓기면 협상 입지가 좁아져 제값을 받기 힘들다는 논리로 매각시한을 없앤 것이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우리금융을 국유은행 체제로 유지해 퇴임 관료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일부러 매각을 늦추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정부의 민영화 의지가 부족할 뿐 아니라 인수 주체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민영화의 걸림돌이다. 소수 지분은 주가가 다소 오른 시점에 팔면 되지만 5조∼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지배 지분을 살 국내 자본을 찾는 것은 어렵다. 반(反)외자 정서가 강한 상황에서 정부가 우리금융을 국제입찰에 내놓는 것도 큰 모험이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외국자본과 접촉하는 작업은 최근 몇 년간 물밑에서 꾸준히 진행됐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2007년 2월 카타르의 하마드 알타니 부총리 겸 외교장관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금융 지분 20%를 수의계약 방식으로 사게 해달라”고 했지만 금융당국이 경쟁매각만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당정, “경영권 조기매각 어렵다”

우리금융 민영화 방식과 관련해서는 △완전 경쟁입찰 △외국 투자가 대상의 주식예탁증서(DR) 발행 △거대 산업자본에 매각 △대주주 여러 곳에 분산 매각 등 다양한 방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당분간은 실현되기 힘든 아이디어라는 분석이 많다.

우리금융 주가는 17일 종가 기준 1만200원. 현재 남아 있는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하려면 주가가 1만6675원은 돼야 하고 이자까지 걷어 들이려면 2만5000원을 넘어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근 금융시장 동향을 감안할 때 달성하기 쉽지 않은 가격대일 뿐 아니라 민간에서 인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본다. 주가가 다소 오르면 소수 지분을 처분하겠지만 경영권은 당분간 현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 당정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민영화 계획이 차질을 빚어 시장의 신뢰가 떨어진 측면이 있는 만큼 민영화가 원만히 이뤄지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블록세일(block-sale):

대규모 지분을 미리 정해둔 가격으로 특정인에게 한꺼번에 넘기는 매각 방식. 주식시장이 열려 있는 동안 많은 지분을 팔면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도입된 제도로 대개 장외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 스웨덴 금융그룹 민영화 사례

공모-블록세일-합병 통해 정부 지분 19.8%로 낮춰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가 표류하면서 1992년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부실이 심해져 45억 달러(약 5조67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스웨덴 노르디아금융그룹의 민영화 과정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분 매각이 거의 매년 이뤄진 데다 현재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와 관련해 거론되는 각종 방안들이 노르디아그룹의 민영화 과정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노르디아그룹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3년째인 1995년 10월 공모를 통해 지분 34.5%를 처분했다. 한국에선 일반 투자자에게 지분이 흩어지면 주가가 출렁거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공모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스웨덴은 많은 주식을 손쉽게 처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첫 지분 매각의 파트너로 일반 투자자를 선택했다.

공모를 실시한 이듬해 9월 노르디아그룹은 자사주 매입 방식으로 지분 6%를 사들였다. 우리금융이 지분 매각 방식으로 선택한 블록세일은 1997년 10월에 이뤄져 정부 지분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스웨덴은 자국의 노르디아그룹을 핀란드의 메리타은행 및 덴마크의 유니단마크은행과 합병해 정부 지분을 19.8%로 낮추는 방식으로 민영화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는 “블록세일뿐 아니라 공모, 합병 등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야만 민영화의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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