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리포트]‘국민 영양음료’ 한국야쿠르트

  • 입력 2009년 6월 20일 02시 59분


38년간 410억개… 달콤한 건강을 팔았다

《‘야쿠르트’는 누구에게나 추억이다. 빨대를 꽂아 마시면 편할 텐데 굳이 용기 바닥을 잘근잘근 씹어 낸 구멍으로 마시는 것을 유행으로 여기던 세대도 있었다. 여름엔 냉동실에서 꽁꽁 얼려 그 어떤 아이스크림보다 새콤달콤 맛있게 먹기도 했다. 가난했던 시절, 매일 배달해 먹기 힘들었던 가정에서는 어쩌다 동네 어귀에서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직접 구입해 자녀들에게 ‘특식’으로 내놓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이런 저런 추억을 선사한 야쿠르트는 1971년 8월생으로 지난해 7월에 400억 병(올해까지 410억 병) 판매를 돌파했다. 이는 야쿠르트 판매가 시작된 이후 1초에 34병이 팔려나갔다는 계산이다. 또 전 국민이 한 사람당 820병씩 먹은 셈이다. 길이로 봐도 대단하다. 이제까지 팔린 야쿠르트(한 병 길이 7.4cm)를 일렬로 쌓으면 296만 km로 지구(둘레 4만70km)를 73바퀴 이상 돌 수 있는 길이다. 용량(한 병당 65mL)으로 계산하면 코엑스 아쿠아리움 수족관을 1000번 이상 채울 수 있는 260만 t이다.》

○‘균 덩어리’에서 ‘국민 음료’로

야쿠르트는 탈지분유를 유산균으로 발효해 만든 제품이다. 제품에 들어있는 카세이균은 장내균층을 정상화시켜 건강을 돕는 효과가 있다. 특히 일부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화 불량이나 설사 등을 유발하기도 하는 우유와 달리 야쿠르트는 유산균이 유당을 분해해 소화하기도 쉽다는 게 한국야쿠르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균’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뿜는 부정적인 어감에다 사업 초창기인 1970년대엔 워낙 유산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영업이 쉽진 않았다. 당시 회사에는 “아무리 돈도 좋지만 균을 넣고 물건을 팔아먹느냐”며 호통을 치는 고객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믿을 것은 오로지 노력뿐 회사는 “우유로 만든 영양식품입니다. 한 달만 드시면 장이 좋아져요”라는 내용으로 꾸준히 홍보를 했고 결국에 먹혀들기 시작했다. 제품 출시 후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야쿠르트의 기능과 달콤한 맛을 소비자들이 알아주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루 10만 개 생산 규모로 설계된 공장을 24시간 돌려야 했을 정도다. 그렇게 하루 생산 물량을 30만 개까지 끌어올렸지만 끊임없이 늘어나는 주문량을 감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 모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감질 나는 야쿠르트 양의 비밀 역시 이런 판매량 급증이 낳은 결과다. 한국야쿠르트는 처음에 80mL 용량으로 제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사겠다는데도 제품을 못 주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는 소비자들의 재촉이 이어지면서 회사는 양을 줄이는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된다. 가격은 40원에서 35원으로 살짝 내리는 대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용량을 15mL 줄인 것. 회사 측은 “생산 설비 확충이 시급했지만 당시 경기 안양 일대에 위치한 공장이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 있어 불가능했다”며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용량을 65mL로 줄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용량 차이가 낳은 마법 덕분에 제품 생산은 물론이고 운반이나 관리도 훨씬 편리해졌다. 야쿠르트 아줌마들도 한 손에 제품을 5개씩 손쉽게 잡고 배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줄어든 용량은 이후 후발업체들이 따라 하면서 자연스레 ‘표준량’처럼 자리 잡았다. 여전히 적은 양에 불만인 소비자들에게 한국야쿠르트 측은 “적은 양이지만 한 병에 유산균이 65억 마리 이상 들어 있어 성인 하루 필요량을 충족시키기엔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야쿠르트 아줌마, 친근한 이미지로 제품 신뢰감 높여

○일등 공신 ‘휴먼 파워’, 야쿠르트 아줌마

40년 가까이 이른 아침이면 전국 방방곡곡 아파트단지나 동네 주택가부터 회사 빌딩 숲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 살구색 모자와 복장을 갖춰 입은 채 야쿠르트가 가득 들어있는 수레를 끌고 다니는 사람, ‘야쿠르트 아줌마’들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아무리 인터넷 쇼핑몰들이 등장하고 대형 할인점이 아무리 발전해도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방문 판매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1971년 47명으로 시작한 방문 판매 직원들은 1998년 1만 명을 넘어서 현재는 1만3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초창기 100병 정도이던 아줌마 1인당 하루 판매량은 현재 500여 병으로 5배 늘었다. 가장 황금기이던 1992년엔 하루 800여 병까지 올라갔으나 최근엔 고기능성 제품 등 선택 폭이 넓어져 자연스레 물량이 줄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냉장고가 있는 집이 드물던 사업 초창기에만 해도 저온 관리가 필수인 유산균 특성상 중간 과정을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생산 후 최소한의 유통과정만 거쳐 소비자들의 손에 쥐여 줄 방법을 연구하다 회사가 떠올린 것은 바로 방문 판매 제도였다. 물론 지금은 냉장 관리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휴먼 마케팅’ 차원에서 이 제도를 확대해 유지하고 있다. 주요 고객층인 주부들은 일방적으로 기업 메시지만 담은 광고보다는 실제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야쿠르트에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단순한 판매원의 차원을 넘어서 전국을 걸어 다니는 홍보맨이자 움직이는 광고판, 그리고 신제품 구전마케터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회사 측에서는 이들에게 적잖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인다. 이들에게 직장 여성 특유의 전문가적 이미지를 주고자 최근엔 유니폼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또 손수레를 카트 형태로 개선하는가 하면 힘을 덜 들여도 되는 전동카트 비중도 늘리는 중. 2010년까지 절반 이상이 전동카트를 끌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서비스직임을 감안해 1년에 두 차례씩 본사 친절아카데미에서 전문적인 판매기법과 고객응대법 등을 교육하기도 한다.

양기락 한국야쿠르트 사장은 “40년간 이어져 온 야쿠르트 마케팅 전략의 한가운데에 항상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있었다”며 “1만3500여 명의 아주머니 모두 히트 상품 제조기”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윌 “위장에도 청신호를”… 프리미엄시장 돌풍

“헬리코박터균을 극복하는 것.”(호주의 배리 마셜 박사)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힘을 합쳤습니다. 위(胃)까지 생각하는 발효유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한국야쿠르트 헬리코박터 공동연구팀)

2000년 한국야쿠르트가 위 전문 발효유 ‘윌’을 내놓으면서 선보인 TV 광고 중 한 장면이다. 이 광고는 헬리코박터균이 위장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세계적 석학 마셜 박사가 등장함으로써 제품을 알리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헬리코박터균의 위해성에 대해 경각심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당시 우리나라 성인 사망 원인 중 헬리코박터균이 유발하는 위암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라 제품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윌은 한국야쿠르트가 위 전문 발효유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1997년부터 5년여에 걸쳐 연구력을 집중한 결과 나온 제품이다. 제품 효능은 서울대병원 김나영 교수팀이 진행한 임상실험에서도 밝혀졌다. 항생제와 함께 윌을 위염 환자들에게 투여한 결과 항생제만 투여했을 때보다 헬리코박터균 억제력이 8.8% 정도 올라간 것. 이를 알리기 위해 한국야쿠르트는 음료 제품치곤 드물게 제품 개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광고 및 홍보활동을 제품 시판 전부터 시작했다.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기존 제품에 비해 광고비를 2배 이상 투입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2005년엔 광고모델인 마셜 박사가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면서 제품 판매율이 껑충 뛰기도 했다.

이처럼 독특한 제품명과 그에 기반을 둔 강력한 마케팅, 그리고 야쿠르트 아줌마 군단이 보유한 방문판매 노하우에 힘입어 윌은 야쿠르트에 이어 또 하나의 신화가 됐다. 2005년엔 시판 4년 10개월 만에 누적 판매 개수 10억 개를 돌파했고 지난달엔 20억 개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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