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본부 민영화 구상… 다시 수면위로 부상 가능성
산업銀, 외환銀 인수 검토… 우리금융-시중銀 M&A 거론
■하반기 이후 본격화 예고
기업은행이 우체국에서 금융부문을 떼어내 인수하는 방안을 한나라당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은행이 민영화 과정에서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와 대형 시중은행을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진정되면 정부의 영향권에 있는 국책은행 및 국유(國有)은행 주도의 은행권 인수합병(M&A)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금융당국과 한나라당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우체국 예금과 보험을 포함하는 금융부문 인수방안을 한나라당 경제위기 극복 금융팀장인 고승덕 의원에게 보고한 뒤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기업은행+우체국금융’ 떠오르는 이유
고 의원은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작년 말 기업은행이 우체국금융사업 부문을 인수해야 하는 이유와 인수 후 생길 시너지 효과를 보고했고 이를 계기로 비공식 당정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며 “산업은행 민영화가 가닥을 잡으면 기업은행에 우체국금융을 파는 방안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용로 기업은행장도 “중소기업 대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우체국금융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기업은행과 우체국금융을 합치는 방안은 은행권 재편의 핵심과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행은 자산운용 능력면에서 손색이 없지만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지점이 적어 예금유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반면 우체국금융은 전국 2700곳에 영업점을 갖고 있어 수신기반이 탄탄하지만 막대한 예금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 M&A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양측의 약점을 최소화하고 강점은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실제 기업은행은 전체 자산 대비 순(純)영업수익(이자 및 수수료)의 비율이 2.82%로 우리은행이나 하나은행보다 높다. 그런데도 지점이 3월 말 기준 568개로 대형 은행의 절반 수준밖에 안 돼 중소기업 대출 재원인 예금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은행의 우체국금융 인수 추진을 계기로 작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우정사업본부(우체국) 민영화 구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인수위는 우편사업 부문을 공사(公社) 체제로 전환하고 우체국금융 민영화도 추진할 뜻을 밝혔지만 우체국을 민간이 경영하면 농어촌지역 서비스가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은행들 짝짓기 하반기 이후 본격화
산업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대형 시중은행과 우리금융지주를 합치는 작업도 하반기 이후 구체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산은은 이미 지난해 말 ‘외환은행을 인수해 수신 기반을 넓힌 뒤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취지의 M&A 방안 보고서를 한나라당 금융팀에 제출했다. 현재 산은의 영업점은 전국 45곳에 불과해 이대로 민영화하면 낮은 금리로 대출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355개의 점포를 갖고 있는 외환은행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외국 자본인 론스타에 3조 원 안팎의 대금을 해외채권 발행으로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정치권의 협조를 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계에선 국책은행이 거액을 들여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경우 산은과 우리금융지주를 합쳐 이른바 ‘메가뱅크’를 만든 뒤 나중에 민간 산업자본에 매각하는 방안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또 대형 시중은행 중 한 곳은 우리금융지주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인 ‘50%+1주’를 매입하기 위해 최근 전략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 모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이 우리금융 경영권을 확보하면 자산 규모가 500조 원 안팎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금융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금융지주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하려면 주가가 지금보다 60% 가까이 상승해야 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파격적으로 인정받지 않는 한 우리금융 지분 매각이 금방 이뤄지긴 쉽지 않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은행 민영화 일정에 쫓기거나 M&A 실적을 높이려는 의도로 은행 구조조정을 진행하면 나중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국가경쟁력과 은행 서비스의 질적 개선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을 잘 선택해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