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논평: 국세청, 이번엔 변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세청장에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을 내정하는 깜짝인사를 단행했습니다. "하마평에조차 오르지 않았던 분이다. 너무나 의외다." "조직이 완전히 물갈이될 것 같다." 국세청에서 나오는 반응들입니다. 국세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학자 출신이 청장에 내정된 것은 43년 국세청 역사상 처음이니 놀랄 만도 합니다.
그러나 국세청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대통령의 깜짝 발탁인사가 뜬금없는 것은 아닙니다. 올 1월 한상률 전 청장이 '그림 로비'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뒤 국세청장 자리는 5개월 째 비어 있습니다. 한 청장의 전임인 이주성, 전군표 전 청장은 비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이 전 총장은 뇌물수수와 알선수재 등으로 구속됐고, 전 전 총장은 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전임 청장 3명이 줄줄이 불명예 퇴진했으니 국세청장은 만신창이가 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처럼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정부 기관은 국세청 말고는 없습니다.
국세청 스스로 각성을 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장들이 단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공직을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했다면, 3명의 청장이 릴레이라도 하듯 연속적으로 국세청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았겠지요.
국세청이 제 머리를 못 깎으니 대통령이 나선 겁니다. 국세청이 대통령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국세청은 국민들의 손가락질도 자초했습니다. 국세청 윗물이 더러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세청 아랫물도 더럽다고 여깁니다. 국세청에 대한 엄정한 비판은 피땀 흘려 번 돈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국민들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청와대는 그동안 국세행정선진화 실무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세청 개혁방안을 다듬어왔습니다. 지방청을 폐지하고 외부감시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조직을 효율화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백 내정자는 "국세청 직원들이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국세청을 개혁하고 직원들의 자존심까지 세우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입니다. 외부 출신 청장에 대한 텃세도 예상됩니다. 백 내정자는 그런 도전을 극복하고 국세청을 변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하면 이번 인사는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