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 “저점 판단 성급”… 3명 “다시 추락 우려”
도약 위해 新성장동력 확충 등 5대과제 풀어야
국회 공전-노동계 파업은 긴장 풀렸다는 증거
최근 일부 경제지표가 개선 조짐을 보이면서 ‘경기 바닥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경제 전문가 10명 중 6명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바닥을 통과한 것으로 본 전문가들도 경기가 다시 추락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또 한국 경제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 활로를 열려면 신(新)성장동력을 적극 육성하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동아일보 경제부는 대학의 경제·경영학 교수 및 국책·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 10명을 전화로 인터뷰해 현재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이들의 진단을 들었다.
○ “바닥 안 지났거나, 판단 일러”
대부분의 전문가는 지난해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급격히 위축됐던 한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데 동의했다. 올해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 성장한 데 이어 2분기에는 2% 안팎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경기흐름을 예고하는 경기 선행종합지수의 구성지표 10개 항목이 4월에 모두 플러스를 나타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이런 전망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6명의 전문가는 몇몇 지표만 보고 ‘이미 저점을 지났다’는 판단을 내리는 건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등 3명은 “아직 경기는 저점을 지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자생적 경기회복이 동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가 저점을 지나 회복세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건 잘못된 판단이며 경제 전반에 재정지출 확대 등에 의한 ‘착시현상’이 있다”고 말했다.
또 3명은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있는 건 맞지만 저점을 지났는지는 알 수 없다는 유보적 태도였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저점인지 알려면 3분기(7∼9월)까지의 경기흐름을 지켜봐야 명확히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4명은 이미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진단했다. 다만 회복세는 더딜 것으로 예상하거나(1명) 상승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3명)고 봤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1분기에 저점을 통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블 딥(이중침체)’ 형태로 또다른 침체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기업 구조조정-내수 활성화 시급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가 한 계단 도약하기 위한 5대 과제로 전문가들은 △신성장동력의 확충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내수시장 활성화 △출구전략 준비 △사회안전망 확충 및 양극화 해소를 꼽았다.
유병규 본부장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려면 기업의 투자활성화가 시급하며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유인(誘因)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불황기는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들을 털고 갈 좋은 기회”라며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한국 경제가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며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내수시장의 활성화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위기를 전제로 만들어진 비상대책을 쓰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억제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며 “한국 경제가 더블 딥에 빠지지 않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과잉유동성에서 탈출하기 위한 ‘출구 전략’의 정책 패키지를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너무 빨리 긴장 풀린다” 우려
경기 조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회 곳곳에서 긴장이 풀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려했다.
특히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의 공전, 노동계의 잇단 파업 등을 긴장이완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조경엽 본부장은 “해결할 경제문제가 쌓여 있는데도 국회가 열리지 않는 건 정치인들이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며, 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이고 일부 시민단체가 연일 시위를 벌이는 것도 심각한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권순우 실장은 “올해 초만 해도 지나치게 비관적인 경제 주체들의 시각이 경제에 부담이 됐는데 이제는 너무 낙관적으로 바뀐 게 문제”라며 “심지어 ‘구조조정이 굳이 필요한가’ 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교수는 “위기감이 이완되면서 소비가 조금씩 나아지는 건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망해야 할 기업들이 망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건 향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들썩이는 현상 역시 경기회복에 대한 성급한 기대감이 낳은 긴장이완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